옥시사태 이후 모두가 불안 제대로 된 재발방지책 마련 국민들 안심시키는 게 중요

생활화학제품에 대한 불안과 공포는 현재진행형이다. 물론 가습기 살균제 사망으로 촉발된 것이다. 가정용 세제는 물론이고 심지어 화장품도 마음대로 쓰지 못하겠다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이들은 살균제나 세정제, 방향제가 있으면 유해여부에 상관없이 내다버린다. 옥시상표가 붙어있는 화학용품은 무조건 1순위 폐기대상이다. 보고만 있어도 왠지 모르게 찜찜하다. 유해하지 않아도, 용량이 많이 남아있어도 상관이 없다. 쓰지 않고 버리는 것으로 불매운동에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국민들 사이엔 화학성 생활용품은 곧 살생물질이나 유독성물질 함유제품으로 인식되고 있다. 살균제 사태이후 화학물질이 들어간 제품을 쓰지 않는 `노케미(No-chemi)족`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시중의 친환경적인 제품 구입뿐만 아니라 직접 만들어 쓰기도 한다. 주부들 중엔 친환경이나 천연성분 세제를 만들어 쓰는 게 유행이다. 세정이나 탈취, 소독에 효과가 있는 베이킹소다와 구연산 판매량이 갑자기 늘어난 이유이기도 하다.

소비자들이 이처럼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데엔 이유가 있다. 정부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살균제나 세정제에 대한 유해성 여부를 제대로 알려주지 못한 탓이다. 생활화학제품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어떤 우려가 있는지 정확히 알려줬어야 했다. 뒤늦은 정부 발표조차도 국민들의 불안을 잠재우지 못하고 있다. 지난주 환경부가 탈취제, 세정제 등 7개 제품에 대해 판매중단과 회수조치를 했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조치는 지난 1월에 해놓고 4개월이 지나서야 공개를 한 것이다. 이로 인해 금지제품이 최근까지 버젓이 시중에 판매되는 허점을 노출했다.

더욱 기막힌 것은 7개 제품 중엔 가습기 살균제 피해원인 물질도 들어있다는 것이다. 이중 신발탈취제인 `신발무균정`엔 산업통상자원부가 2013년 사용을 금지한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가 검출됐다고 한다. 금지화학물질이 사용됐는데도 알지를 못한 것이다. TCE(트리클로로에틸렌) 함량기준을 40배나 초과한 `에어컨·히터 살균탈취` 제품도 마찬가지다. TCE는 환경부가 이미 2006년 유해화학물질로 고시한바 있어 판매나 사용을 할 수 없다. 그런데도 판매되고 있었다는 게 말이 되는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정부 접수는 지난해 마감됐다. 올 들어 민간차원에서 접수한 결과 566명(사망자 41명 포함)이 피해자로 추가신고를 했다. 몇 명의 피해자가 더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본인도 알아채지 못하는 피해자가 많기 때문이다. 전 국민이 피해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실제 어린이 1만 5000명을 포함해 전 국민의 30%가 가습기 살균제에 노출됐다는 분석도 있다. 가습기 살균제 조사·판정위원회 공동위원장인 홍수종 서울아산병원 교수의 주장이다. 당국의 무관심과 무지가 불러온 일이다. 피해자들로선 분노가 앞서는 일인 것이다.

살균제 등 화학제품이 생활의 일부가 된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이들 제품 가운데 상당수가 살생물질이라고 한다. 소비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한다. 제조·판매자가 안전하다고 하면 그런 줄로 알고 쓸 수밖에 없다. 실험결과를 조작하거나 내용물을 엉터리로 표기한다 해도 알 길이 없다. 그렇다면 결국은 정부가 제품에 대한 관리감독은 물론이고 유해성 여부를 알려줘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금지물질을 사용하고 있는지도 꼼꼼히 점검해야 한다.

뒤늦게나마 환경부가 생활화학제품에 함유된 살생물질에 대한 전수조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옥시사태 이후 지금까지 얼마나 조사를 했는지, 결과는 어떤지 국민들에게 소상히 공개해야 한다. 전수조사 이후 향후 계획은 무엇인지도 밝혀야 한다. 조사를 못했으면 못했다고 밝히면 된다. 기준이 없다거나 유해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등의 말로 유야무야 할 수는 없다. 이제부터라도 국민에게 솔직해져야 한다. 소 잃고라도 외양간은 반드시 고친다는 믿음을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지금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정부가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을 국민이 없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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