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사고는 사소한 조짐을 방치할때 발생 제조업체·정치·언론·시민단체 등 공동책임 모두 반성하며 국민안전 제도 개선 나서야

가습기 살균제 사고는 무려 150여명의 무고한 생명이 부지불식간에 사망했고, 정확한 숫자도 파악하기 힘들 만큼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당한 충격적인 대형 사고이다. 천재지변은 물론 대규모 화재나 폭발도 없었는데 이렇게 엄청난 인명이 살상되는 참극이 발생한 현실을 솔직히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런데 이런 대형 사고가 발생하기까지에는 그 이전에 수많은 조짐이 있다고 한다. 이를 경험적으로 연구한 결과가 소위 `1:29:300 법칙`이다. 1931년 미국의 보험회사 관리자였던 하인리히가 7만 5000건의 사고를 실증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중상자가 1명 나오면 그 이전에 같은 원인으로 발생한 경상자가 29명, 같은 원인으로 부상을 당할 뻔한 잠재적 부상자가 300명 있었다. 큰 사고와 작은 사고 그리고 사소한 사고의 발생 비율을 법칙화한 것으로 `하인리히 법칙`이라고도 부른다. 이 법칙은 대형 사고는 언제나 사소한 사고들을 방치할 때 발생한다는 것으로, 각종 사고나 재난은 물론 사회적·경제적·개인적 사고에도 적용되는 법칙으로 넓게 해석되고 있다.

이번 사고는 1994년 말 가습기 살균제가 최초 발매되어 2002년 3월쯤 유아 사망자가 발생하고, 그 이후 사망자가 속출하면서 대형사고가 됐다. 이 과정에서 유독물이 가습기 살균제로 사용되는 것이 문제되지 않았고, 제품 출시 때 독성실험을 거치지 않았으며, 피해발생에도 역학조사를 하지 않는 등 대형 사고의 크고 작은 조짐들을 계속 방치했다. 현실에서 하인리히 법칙이 그대로 일어났다.

그렇다면 가습기 살균제의 위험을 방치하여 이처럼 대형 사고로 키운 것은 누구의 책임인가? 일차적인 책임은 당연히 제품을 직접 생산한 제조업체에게 있겠지만 이들로 한정하기엔 부족하다. 이번 사고는 국민 안전을 책임지는 관계부처, 민생경제를 외치는 정치권, 사회문제를 비판하는 언론계, 진리를 추구하는 학계, 소비자 보호에 앞장서야 할 시민단체 등에게도 모두 책임이 있다고 하겠다. 왜냐하면 어느 한 주체라도 자기 역할에 제대로 충실했다면 이처럼 커다란 비극이 미연에 방지됐거나, 지금보다 훨씬 작은 수준으로 일어났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번 사고를 현재와 같은 검찰 수사를 통해 제조업체나 관계자 일부를 처벌하고 피해배상이 이루어지는 것으로만 매듭짓지 말아야 한다. 관련기업에 대한 비난이나 비판기사, 국회 청문회,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 등으로만 끝내지 말아야 한다. 이처럼 대응하는 것은 일회성으로 사고를 처리하는 그야말로 미봉책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번 사고를 계기로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제품이 만들어지는 것을 근본적으로 방지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선, 결함이 있는 제품을 생산한 기업에 대해 피해배상책임을 쉽게 물을 수 있도록 제조물책임법을 손질해야 한다. 이 법은 2002년부터 시행되고는 있지만 피해자가 제조사의 결함을 입증하기 어려워 손해배상을 받기가 매우 어려워 실효성에 의문이 있다.

그리고 다수 소비자에게 피해가 발생한 사고를 대상으로 집단소송제 도입을 구체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피해자 일부가 가해자를 상대로 소송을 하면 다른 피해자들도 별도 소송 없이 그 판결로 구제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많은 선진국가가 소비자 피해 분야에서 집단소송을 인정하고 있다. 또한, 반사회적 불법행위를 대상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도 적극 도입해야 한다. 손해배상 범위를 피해액으로 한정하지 않고 제재적인 성격의 추가적인 금액을 포함하여 배상하도록 함으로써 불법행위가 반복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해야 한다.

이번 사고와 관련하여 정치권, 언론계, 학계, 시민단체 등도 책임이 있다는 것은 이미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이들은 국민 안전과 직결되는 제도를 도입 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하는 집단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들이 제도개선에 앞장선다면 적절한 해결방안을 반드시 마련할 수 있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1:29:300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국가가 될 것이다.

고려대 미래성장연구소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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