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대 초, 대전역 북쪽 솔랑이(소제동)에는 경치가 중국의 소주(蘇州)에 버금갈 정도 빼어나 붙여졌다는 `소제호(蘇提湖)`라는 호수가 있었다. 폭과 길이가 약300m에 450m나 되는 호숫가에 1905년경 일제는 `신사`를 지어 우암 송시열 고택인 `기국정`의 위풍을 꺾으면서 소제공원을 조성했다. 이후 1927년 성리학의 샘터인 이 호수를 메꾸고, 여기에 철도관사 등 주거지역으로 만들고, 여러 갈래 있던 물길도 바꾸어 지금의 대동천을 만든다. 호숫가에 서로 마주보고 있던 기국정과 삼매당은 가양동으로 변형돼 옮겨지고, `신사`는 도청뒤 대흥동 현 성모병원 자리로 이전한다. 그 외 커다란 초가집이 있던 홍도방죽을 비롯해 충남중(옛 신흥중) 앞에서 대동천으로 유입하는 개천와 가양동에서 대전상고 앞으로 반듯하게 가로지르던 냇물도 있었다.

어린 시절을 보낸 대흥동 2동사무소 앞을 가로 지르던 냇가에는 말잠자리나 호랑이잠자리가 없었다. 그래서 자주 테미방죽(현 테미시장)까지 원정길에 나서야 겨우 볼 수 있었다. 이렇듯 중구에도 보문산에서 시작해 공설운동장 앞으로 해서 대전천으로 유입하는 대사천, 천근마을에서 시작해 문화동을 가로지르면서 오류동으로 흘러 유등천으로 합치는 냇물과 유천동 중앙을 가로 지르던 물길이 있었다. 대흥동 파출소 뒤에서 시작하여 중앙로를 거쳐 선화동 어린이 놀이터 인근에서 도청을 휘감아온 개천과 합쳐 선화초등학교와 대전여상 사이를 지나던 천(川), 목양마을에서 목동으로 가로 지르는 천, 변동에서 내동, 가장동을 거쳐 용문동을 가로 질러 유등천으로 합치는 천, 갈마동과 유성에서 각기 갑천을 향해 흐르는 냇물 등 곳곳에 많은 물길이 있었다.

그런데 도시개발로 복개되어 하수도로 바뀌고, 그 위로 차도가 개설되었다. 우린 여기서 물고기와 잠자리 잡으면서 놀았고, 지렁이와 땅강아지를 잡아 방학숙제로 제출하였다. 겨울이 되어 얼음이 꽁꽁 얼어 썰매를 지치던 시절이 그립다. 가는 길이 복잡하여 불편하고 멀더라도, 복구가 된다면 깨끗한 냇물이 흐르던 모습이 보고 싶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청마루 밑으로 물이 흐르는 형식을 갖춘 보기 드문 전통건축물 2개나 대전에 있다는 사실이다. 바로 가양동에 있는 송시열이 강학하던 정면 4칸, 측면 2칸에 홑처마 맞배지붕의 남간정사(南澗精舍)와 계족산 비래사에 있는 동춘당 송준길이 학문을 연마하고 강학하던 정면 3칸, 측면 3칸에 팔작지붕인 옥류각(玉溜閣)이다.

유병우 씨엔유건축사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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