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 직접시음 유해파동 잠재워 '정책·관리' 이상 중요한 건 청와대-여론 잇는 소통 역할

대통령 비서실장, 조선시대로 치면 도승지다. 정 3품 당상관직으로 승정원의 우두머리 관직이다. 정2품 이상을 대감이라고 부른 점에서 보듯 지위가 높진 않았다. 하지만 이조의 역할을 분담하고 국왕의 자문역을 맡는 이방의 직무와 홍문관 직제학, 상서원의 정(正)을 겸직하는 막강한 자리였다. 경연과 입시에 참석하고 관리를 임명하는 역할을 병행했다. 옥새를 관리하고 사정기관을 챙겼다. 직무가 무거운 만큼 예나 지금이나 고단하긴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 재위 7년 간 모두 7명의 도승지가 일했다. 세종 재위 30년 동안 19명이 국왕을 보좌했다. 유례를 찾기 힘든 태평성대에도 평균 임기가 1년 6개월에 머물렀다. 대한민국 현대사라고 다를까. 박근혜정부 들어서만 비서실장 얼굴이 네 차례 바뀌었다. 역대 정부를 보면 1년을 채우지 못한 채 물러난 인물을 헤아리기 어렵다. 물론 5년 단임제 구조에서 장수를 기대하기 어려운 처지이긴 하다.

이원종 전 대통령 직속 지방자치발전위원장이 비서실장으로 중용됐다. 고향이 충북 제천인 그에 대해 충청뿐 아니라 정치권 안팎의 평가는 `적임`이라는 것이다. 서울시장과 충북도지사(3차례)를 지낸 이력과 함께 공직 50년 동안 보여준 발자취를 알기 때문이다. 박정희 대통령 때 청와대 행정관으로 일하며 새마을운동의 기초 작업에 관여했고, 내무행정비서관으로 노태우 대통령을 보좌한 경험이 있어 청와대 정서와 풍경에 익숙한 그다. 개각 때마다 국무총리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더니 청와대로 귀환했다.

이 실장은 화려해보이지만 형극의 길을 걸었다. 워낙 가난하다 보니 국립 체신대를 겨우 졸업한 뒤 공중전화 동전을 수거하는 9급 공무원으로 공직에 첫발을 디딘다. 형설지공(성균관대 행정학과)으로 행정고시에 합격한 직후에는 폐결핵과 사투를 벌였다. 진정성과 소통 능력, 친화력은 이런 고난을 거쳐 형성됐을 것으로 짐작된다. "공직이란 내게 필요한 자리가 아니라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하는 자리"라는 소신도 다르지 않아 보인다. 여론조사 결과 민선 도지사 3연임이 확실시되던 2006년 임기 6개월을 앞두고 전격 불출마를 선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70대 중반으로 접어들어 어쩌면 마지막 공직이 될 이 실장의 책무는 `정책`과 `관리` 쪽으로 모아진다. 오랫동안 지켜본 뒤 중용하는 박 대통령 스타일에 비춰본 이들의 분석이다. 쉽지 않은 역할이다. 하지만 여론은 그 이상을 고대하고 있다. 당장 민의(民意)는 대통령과 여론을 연결하는 소통의 창구로서 제 기능을 해주기 바라는 눈치다. 구체적으론 청와대가 불통이나 독선 같은 이미지에서 벗어나 협치가 제대로 구현되도록 할 말을 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여당인 새누리당이 만신창이가 된 상황에서 이런 당위성은 더욱 커진다.

이 실장은 대통령에게 수돗물을 마시게 한 일화가 있다. 젊은이들을 위해 썼다는 책 `인생, 네 멋대로 그려라`에 남겼다. 서울시장으로 재임하던 1993년 수돗물 유해 논란이 불붙자 야외 행사에 참석한 당시 김영삼 대통령에게 깜짝 시음을 건의했다. 상상하기 어려운 순발력과 결기다. 경호원이 급히 컵을 준비했지만 수도꼭지 시음을 관철시켰다. `대통령께서는 몸을 구부려 직접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물을 마셨고, 빙그레 웃으며 손으로 입가의 물기를 닦아내는 모습까지 그대로 방송을 타고 나갔다.` 수돗물 파동은 한순간에 가라앉았다.

도승지의 역할이 중차대했던 건 왕명을 출납한 데 있었다. 왕이 내리는 교지와 신하들이 올리는 글 모두 비서실 격인 승정원을 거쳤다. 왕명하달과 하의상달이라는 가교로서 소통의 창구 역할을 했다. 국민들의 기대치는 이 대목까지 올라가 있다. 기획력과 추진력은 이미 지켜봤다. 지역위원장으로 재임 때만 하더라도 지역행복생활권사업을 추진하면서 7개 도의 생활권협의체 공동협약을 이끌어내 사업 추진의 동력을 살리는 능력을 발휘했다. 이제 YS가 수도꼭지에 직접 입맞춤하도록 한 진정성과 소통 능력을 현실에 접목시키는 과제가 남았다. 서울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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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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