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사과(The Apology)`가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리는 `핫 독스(Hot Docs)` 영화제에서 처음으로 상영됐다. 중국계 캐나다인 티파니 슝 감독이 만든 영화 `사과`는 한국과 중국, 필리핀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3명의 일상을 다룬 다큐 영화다. 영화 제목을 `사과`로 지은 것이 눈에 띈다. 외국인의 눈에도 사과를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전세계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 대한 분노와 일본에 대한 강력한 사과 촉구의 메시지에 다름 아니다.

사과는 단지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구하는 행위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정신의학자인 아론라자르는 저서 `사과 솔루션`에서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의 독일 대통령의 2차세계대전 만행 사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유대인 학살 침묵과 반유대주의 사죄는 잘못의 진솔한 인정, 진정한 후회, 잘못의 해명, 피해 보상이 포함돼 있는 사과의 모범으로 소개한다.

가해자가 예를 갖추지 않는 사과는 사과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갑질 사과`가 그런 경우다. 경비원 폭행으로 물의를 일으킨 미스터피자코리아 정우현 회장과 운전기사 상습폭행 혐의를 받고 있는 정일선 현대비앤지스틸 사장이 "물의를 일으켜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는 사과문을 냈지만 등 돌린 여론은 돌아오지 않고 있다. `논란 잠재우기용`이라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미친 파장이나 피해자의 상처를 감안했을 때 사과 방식이 잘못됐다. 피해자를 직접 만나 사과의 뜻을 전하지 않고 공식사과를 위해 얼굴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사과문도 자신이 직접 전했다고 볼 수 없다는 불신만 키웠다. 심지어 노동부가 실태조사에 들어가자 폭행을 부인하기까지 했다. 처음부터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할 생각이 아니었다. 뻔뻔한 갑질 사과 방식이다.

70명의 가습기 살균제 사망자를 낸 영국회사 옥시의 대표가 무려 5년 만에 사과했다. 불매운동과 여론이 악화되자 대표가 기자들 앞에 나선 것이다. 여론에 떠밀린 전형적인 `여론 잠재우기사과`다. 사프달 옥시 대표의 말은 갑질스럽다. 피해자 보상안을 내놓으면서 보상금이 아닌 인도적 기금이라는 표현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분쟁지역의 난민이나 피난민, 분쟁희생자를 대상으로 하는 원조를 떠올리는 이 말을 사과라고 받아들여야 하는지 씁쓸하기 짝이 없다. 누가 영국을 신사의 나라라고 했을꼬. 이찬선 천안아산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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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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