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 가치 더욱 부각될 것… 교육 통한 이념 되살리는 일 중요"

"협동조합이라는 게 문자 그대로 경제적 약자가 서로 힘을 합친 것이죠. 더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지위를 향상시켜 나가자는 게 협동조합 운동입니다. 요즘 시대적 화두인 경제 민주화와 궤를 같이 하는 것인데 엘리트들 조차 그 의미를 제대로 모른단 말 이예요." 원철희 농식품신유통연구원 이사장(전 농협 중앙회장)은 "앞으로 협동조합의 가치가 더욱 부각될 것"이라며 "농업협동조합 발전을 위해서는 교육을 통해 협동조합의 이념을 되살리는 일부터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농협 중앙회장 재임 당시 농협 개혁의 방향 등을 놓고 정부에 맞섰던 원 이사장은 "(정부와 정치권은) 농협에 간섭을 하는 대신 지원을 할 때 개혁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거듭 촉구했다.

◇대담=송신용 서울지사장

-근황을 궁금해하는 충청인들이 적지 않은 데.

"나야 뭐 흘러간 물인데…농식품신유통연구원 이사장으로 13년째 있다. 유통을 통해 농업과 협동조합에 이바지할 길이 있는 지 공부하고 있는 중이다."

-연구원에서는 주로 어떤 활동을 하나.

"일종의 사단법인인 데 1999년 설립됐다. 청와대 농림수석비서관을 지낸 최양부 박사와 김동환 박사 등이 주도해 만들었다. 출범 뒤 나는 국회의원으로 있어서 고문으로 참여했다. 내가 농협 중앙회장으로 재임하며 추진한 일 중 하나가 농협이 세계 유례 없이 도시에 물류기지를 만들자는 거였다. 그렇게 하나로 클럽이 문을 열었다. 그 걸 하면서 농협이 돈 장사만 하는 곳이 아니라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는 데 그런 유통을 더 발전시켜 나가자, 이런 취지로 일하고 있다."

-협동조합의 가치가 새롭게 조명 받고 있는 걸 어떻게 받아 들이나.

"경제적 약자가 손잡고 권익을 신장시키자는 게 협동조합이다. 일본에선 2차 대전 끝난 다음에 유럽 모델을 도입해 정부와 손잡고 전후(戰後) 붐을 일으키는데 크게 기여한 조직이 됐다. 한국도 5·16 뒤에 우리나라 농업을 좀 제대로 하기 위해 일본 걸 그대로 베껴와 가지고 적용을 시켰지. 그런데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선진국이라든지 일본은 협동조합 스스로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면서 정부는 옆에서 지원을 해줬는데 우리는 국영기업체처럼 끌고 갔단 말이야. 물가가 폭등했을 때 물가안정을 위해 농민들을 희생시키면서 내리도록 하는 거 그건 정부가 할 일이지 농협이 할 일이 아니란 거지. 그 걸 농협에 다 시킨 거야. 어떻게 해서든지 정부의 영향 아래 놓으려다 보니 정권이 바뀔 때마다 농협 개혁이라는 말이 나왔다. 협동조합이 뭔지 모르는 위정자들 때문에 나온 결과지."

원 이사장은 협동조합운동 정신을 가장 잘 살리고 있는 나라로 덴마크를 들었다. 조합이 정치권에 로비 같은 걸 할 이유가 없다는 거다. 여야 정치인이 경쟁하듯 달려와 조합의 목소리를 청취한 뒤 정책적인 뒷받침을 해준다는 설명이었다.

-간섭이 문제이긴 한 데 과연 농협 스스로 철학이나 이념을 제대로 구현시키고 있다고 보는지.

"그 걸 못해서 그런 건지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모르겠다. 정부가 간섭을 하니까 농협이 못하는 건지 농협이 못하니까 정부가 간섭을 하는 건지. 이건 서로 쌍방한테 다 책임이 있는 거지. 분명한 건 과도한 간섭은 안된다는 거다"

-농협 내부에서 도농 간 조합 사이의 인식의 괴리 같은 게 엿보이는 게 사실이다. 농협의 이념을 되살리기 위해 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지 않나.

"사실 협동조합은 교육사업이다. 교육사업은 직원뿐 아니라 밖에 있는 사람들한테도 중요하다. 덴마크가 오늘날 국민 전체가 협동조합의 나라로 성공한 건 국민교육제도 덕분이다. 농사를 잘되게 하려면 퇴비 주듯이 토양을 좋게 해주는 게 교육사업이다. 그런데 교육에는 돈이 좀 들어간다 말이야. 교육사업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눈에 띄는 다른 사업에 주력할 일이 아니다. 지금도 신용을 분리하다 보니까 교육사업을 할 돈이 중앙회에 없는 것 같다. 그런데 교육사업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농협은 존재할 수 없는 특수 조직이다. 새 회장이 들어와서 농협이념을 다시 살리겠다는 얘기를 17년 만에 처음하고 있는데 참으로 바람직한 거다. 농협은 다른 조직보다 월급을 조금 받고 이념으로 무장해서 보람은 두 배로 가지는 특수한 조직이 될 때 존재 가치가 있는 것이다."

-선진국의 사례를 들려 준다면.

"덴마크 교육프로그램, 그 게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어려운데 덴마크 사람들은 어떤 말을 하느냐면 농업협동조합의 정관이 덴마크의 헌법보다도 더 강하다고 한다. 그런 나라다. 권리와 의무를 함께 부과한다. 2006년 미국에 가서 6개월 동안 미국협동조합 연구소 탐방을 했는데 미국도, 캐나다도 신세대 협동조합이라는 법을 고쳤다. 적어도 새로운 세대의 협동조합은 권리만 주장할 게 아니라 의무를 부과해야 한다는 취지다."

-농업을 살릴 대안이 없을까.

"정부도 그렇지만 국회의원들이 공부를 안 해서 야단 칠 줄만 알지 대안을 내놓는 사람이 없다. 일본은 2008년부터 도시민을 설득해 고향을 응원하는 세금(향토납세제도)을 만들었다. 서울 살면서도 일정한 주민세의 일부분은 내가 지원하는 내 고향이라든지 아니면 다른 농촌에 돈이 들어가게끔 하는 식이다. 우리나라에 그런 세제가 있나. 지난번에 중국과의 FTA(자유무역협정) 체결하면서 그 결과로 득 보는 기업들이 농촌을 살리는 상생기금을 마련한다고 원칙만 합의하고 넘어갔는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일본의 정책은 지방상생이다. 국토의 균형발전을 위해 지방을 피폐하게 만들면 안 된다는 정책을 만들어 범정부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반대로 우리나라는 모든 정책을 힘없는 농림부에 맡기고 있다. 대만은 농림부가 없다. 내정부(우리나라의 행정자치부에 해당)내 농업위원회가 농업을 끌어간다. 힘 센 내정부가 농민을 지원해준다. 식량안보를 지키는 데 농업이 기여한다는 믿음이 크다. 복지제도도 농촌 먼저 만들고 도시로 간다."

-최근 농협중앙회가 김병원 회장 체제로 새 출발했다. 조언을 한다면.

"그 분은 제가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사람이다. 남평농협이라고 아주 작은 조합이지만 제법 농협다운 농협으로 가고 있는 농협이다. 농협을 비판하는 제일 큰 조직중 하나인 전농이 나주남평농협만은 비판 할 수 없다고 할 정도다.(웃음) 그런 사람이 회장이 되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농협다운 농협으로 가보려고 애를 쓸텐 데…정부가 농민의 농협으로 가게 해줄 건지 그건 잘 모르겠다. 또 하나 농협이 국정감사를 받을 이유가 없다. 정부가 보조금 준 부분에만 국정감사 하면 된다. 정치권에서 감 놔라 배 놔라 하고, 자회사 사장이 이러니 저러니 할 일이 아니다. 선배로서 조언하자면 임직원들을 다시 의식화 시켜서 제대로 된 농협을 만들기 바란다. 후배 동지 여러분들도 뜻을 합쳐 분발해야 한다. 농업이 무너져 내수의 기반이 없으면 무엇을 가지고 이 어려운 세계 경제시대를 버텨나가겠나."

-충청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요즘 신문을 보면 충청 대망론이 많이 나오더라. 사실은 내 고향이라 그런 게 아니라 충청도가 판단을 하는 데 있어 가장 가치중립적인 지역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뜨뜻미지근 하다는 소리도 듣고 그러는데 내가 충남 출신으로 농협 전국조직을 이끌고 보니까 농협 생긴 이래 제일 탕평농협으로 끌고 갈 수 있었다는 평가를 들었다. 충청도가 지역분열을 빨리 메꿔 줘야 대한민국이 발전한다. 그런 역할을 충청도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 줬으면 한다."

◇원철희 이사장은

농협은 물론 한국 농업의 산증인이자 역사로 불린다. 충남 아산 출신으로 농협 중앙회장을 연임했다. 충청인으로는 처음이자 마지막 회장이다. 또 국제농업협동조합기구(ICAO) 회장을 지냈다.

아호인 미석(米石)이 상징하듯 농업 한 분야에 천착했다. 농협 중앙회 비서실장과 농협 충남도지회장, 대통령 경제비서관 등의 이력이 그 중 일부다.

16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며 국회 농림수산특위위원장을 지냈을 정도로 그가 걸어온 길은 농업과 뗄래야 뗄 수 없다. 현재도 농어촌공사 고문과 식생활교육네트워크 공동대표로 있다. 통합력과 기획력, 추진력이 탁월하다는 평이다.

한편으론 협동조합 운동에 앞장섰다. 농수축임업협동조합 중앙협의회 회장과 한국협동조합협의회 대표를 지낸 뒤 1997년 ICAO 회장을 맡아 지구촌 협동조합 운동을 이끌었다.

농협 중앙회장으로 재임하던 1994-1999년 농협 개혁 방향 등을 놓고 정부와 부딪힌 일은 지금까지 회자된다. 정부의 간섭에 맞선 게 빌미가 돼 엄청난 핍박을 받았다는 게 중론이다. 당시 농협 조합장들은 신임투표에서 96.2%라는 절대 지지로 원 회장에게 힘을 실어줬다.

도지회장으로 근무했던 충남농협에 대해선 "모든 임직원들이 하나가 돼 농협다운 농협을 만들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고 회고하며 금산 추부의 이동욱 조합장 사례를 들려줬다. 추부가 오늘날 우리나라 깻잎의 43%를 공급하는 지역이 된 건 이 조합장 같은 분들의 헌신 때문이라는 것이다.

원 이사장은 "우리나라 모든 농협을 그런 조합으로 만들고자 했던 꿈이 그동안 그리다만 그림으로 끝나고 만 것 같다"고 아쉬움을 토로하면서도 후배들이 나머지 그림을 채워주기를 기대했다. 그러면서 "자리는 떠났으나 농협다운 농협이 되도록 하는데 일조를 해야 되겠다는 충정이 남아있기 때문에 나이가 들었음에도 농협에 자극을 주기 위해 공부를 하고 있다"는 토로했다.

최근 일고 있는 협동조합 운동과 관련해선, "경쟁자로 보지 말고 농협이 맏형의 역할을 하면서 어떻게 도와줄지 생각하고 교육시켜야 한다. 농협이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당부했다.

원 이사장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고려대 정책과학대학원을 마쳤다. 순천향대와 조선대에서 명예경영학 박사를 받았다. 저서 `돌보다 많은 쌀`과 `불씨 선생`이 있고, `싱가포르의 성공``자기 혁신의 길`을 번역했다. 새마을훈장 노력장과 금탑산업훈장, 고객만족경영혁신 전국대회최고경영자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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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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