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 거슬러선 배 뒤집혀 3당 체제 순항 여야 과제 협치로 대한민국 미래 열길

`수소이재주 역소이복주`(水所以載舟 亦所以覆舟)라고 했던가.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엎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4·13 총선의 함의다. 민심이 새누리당이라는 배를 완전히 뒤집을 정도로 성나 있을 줄은 투표함을 열기 전엔 상상하기 어려웠다. 집권여당은 하루아침에 제 2당으로 굴러 떨어졌고, 야권 분열에 한숨 짓던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대약진했다. 국민이 내린 결론은 16년 만의 여소야대, 20년 만의 3당 체제다. 순한 양이던 유권자는 3당에 의회권력 분점이라는 대명령을 내렸다.

이제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유례없는 시험대에 올랐다. 밑바닥 민심의 시그널을 제대로 읽어 국정 운영과 여의도 정치가 변화해야 할 시점이다. 새누리당은 친여 성향 무소속을 제 아무리 끌어 모은 들 과반을 확보하지 못한다. 법안 통과나 국무위원 탄핵 소추도 2당 이상이 손을 잡지 않고선 불가능하다. 통치에서 협치로, 진영논리에서 타협으로의 인식 전환을 요구한다. 당정으로선 통렬한 반성이 우선이다. 거야(去野)는 국정엔 협조하고 정책으로 승부하는 자세를 보일 때다.

민심의 쓰나미는 청와대라고 비껴가지 않았다. 총선 결과를 놓고 수석비서관실로 토론을 가졌다고 한다. 사실상 `반성문`이 만들어졌고, 이병기 비서실장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에게 전해졌다. `선거 민의의 겸허한 수용`, `국회와 긴밀한 협력`(18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이라는 박 대통령의 언급은 이런 과정을 거쳐 나왔다. 움베르토 에코는 소설 `장미의 이름`에서 "진리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사람을 경계하라"고 했다. 박 대통령은 애국과 충정이 자신의 전유물이 아님을 인식해야 한다.

야구로 비유하자면 불 같은 강속구(소신·원칙·신뢰)만이 최고의 선택은 아니다. 수비진을 믿고 포수의 사인에 따라 때때로 스트라이크존 구석구석을 찌르는 변화구와 유인구를 구사할 필요가 있다. 관중석의 야유까지 담아내는 경기 운용은 남은 임기 22개월을 한결 여유있게 만들 것이다. 당정은 물론 청와대와 야당 간의 칸막이를 제거 못할 이유가 없다. 여당 지도부에 자율권을 주고, 조정자 역할에 머무르라는 얘기다. 나아가 더민주 김종인 비대위 대표,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 수시로 만나 입법 세일즈에 주력해야 한다.

국회는 19대 의원 임기가 40일 가까이 남았음을 잊어선 안 된다. 선거 결과에 함몰되지 말고 꼭 해야 할 일을 찾아 역대 최악의 국회라는 오명을 씻길 바란다. 그 중 하나가 18대 국회 막판에 만들어진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이다. 오늘날 식물국회의 주범으로 전락한 만큼 여야가 대화 테이블에 앉는다면 개정의 실타래를 찾을 것이라고 믿는다.무쟁점 법안이자 지역경제활성화를 위해 처리가 화급한 `규제프리존특별법`도 마찬가지다. 총선에서 드러난 민심을 헤아린다면 결론은 자명하지 않은가.

아쉽게 민의와 동떨어진 행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새누리당이 비대위 체제 출범을 놓고 내홍을 벌이는 것은 민심과 거리가 먼 일이다. 공천 배제됐던 무소속 당선자의 복당을 둘러싼 계판 다툼 역시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주도권을 빼앗겨 심사가 뒤틀린 탓인지 야권의 선진화법 개정 움직임에 대해 몽니를 부리는 것도 다를 건 없다. 국민의당 천정배 대표가 `이명박·박근혜 정부 청문회`와 같은 정치 공세를 펴는 것은 헛방이다. 일할 생각보다 이념 전쟁에 쏠렸다간 `역소이복주` 신세가 되는 것은 시간 문제다. 완장을 찬 채 기고만장하게 대권도지를 향하는 야권 잠룡들이 특히 명심해야 할 대목이다.

꼭 4년 전 4·11 총선이 끝난 뒤 주요 신문 제목은 `새누리도 놀란 과반…박근혜의 힘`이었다. 댓구처럼 `제 1당 자신했던 민주당, 뒤집어진 결과에 경악`이 눈에 띈다. 독주와 오만의 대가는 시간을 두고 나타날 뿐 누구 하나 예외가 될 수 없다. 민심을 거슬러선 배를 띄우기는커녕 뒤집어지기 십상이다. 영국의 비평가 허버트 조지 웰스의 경구를 변용해 교훈을 반추하자면 이런 것이다. "우리는 정치인이 선거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다는 사실을 선거를 통해서 배운다." 서울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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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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