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의 아름다운 건축물

깔끔하게 단장된 정원이 시전을 사로잡는다.
깔끔하게 단장된 정원이 시전을 사로잡는다.
청원군 내수읍 형동리에는 거장의 작품세계와 예술혼을 오롯이 품고 있는 한국의 전통가옥인 한옥이 눈에 들어온다.

고 운보 김기창(1914-2001) 화백이 생전에 기거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던 `운보의 집`이다.

운보의 집은 위치적으로 자연 경관이 수려한 산자락을 끼고 있으며 조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여기에 화가가 직접 작업했던 장소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를 더하고 있다.

운보의 집은 대지면적 5만 8869㎡에 고 운보 김기창 화백이 생전에 기거하던 전통한옥을 중심으로 미술관과 분재공원, 수석공원, 조각공원으로 조성돼 있다.

`운보의 집`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깔끔하게 단장된 정원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한옥과 조화를 이룬 이 정원은 한국의 100대 정원 중 한 곳에 선정됐다.

눈을 들어보면 고풍스런 한옥이 여행객을 반긴다.

안채와 행랑채, 정자와 돌담, 연못의 비단잉어가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한다.

운보의 손길이 화폭에서 막 떠난 듯한 미술관에서는 그의 역동적이고 열정적인 삶이 녹아있다.

운보미술관 전경

`운보의 집`의 또 다른 볼거리는 분재, 수석, 조각공원이다.

한옥과 정원, 돌담장과 아름답게 어우러진 분재, 수석, 조각 작품들의 절묘한 조화는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청원군 내수읍 형동리는 운보 화백 어머니의 고향으로 운보가 부인과 사별한 후 7년여에 걸쳐 한옥을 지은 뒤 이곳에서 기거하며 작품 활동을 한 곳이다.

1979년 착공한 운보의 집은 1984년에 완공됐다.

그래서 일까, 운보의 집 곳곳에 어머니와 아내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나는 듯하다.

운보는 지난 2001년 88세의 나이로 타계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의 자취를 일상 속에 품고 살고 있다.

운보의 작품인 1만원권 지폐에 새겨진 세종대왕 영정이 그러하고, 30년의 긴 세월이 지나도록 그의 예술혼을 오롯이 간직한 채 묵묵히 자리잡고 있는 운보의 집이 있기 때문이다.

운보는 청각장애를 극복하고 한국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한국 미술계의 거목이다.

인생말년 무위자연의 순수를 표방한 ‘바보산수’의 새로운 경지를 통해 ‘한국의 피카소’로 극찬을 받았던 국민화가다. 그의 나이 8세 때 보통학교 입학 첫 날 장티푸스에 걸려 고열로 인한 후천성 청각장애인이 됐다. 세상과 소통할 수 없는 답답함에 그림을 끄적이던 아들을 지켜본 어머니 한윤명 여사의 권유로 17세에 이당 김은호 화백 문하에서 미술수업을 시작했다. 촉망받던 여성화가 우향 박래현과의 결혼은 운보의 삶과 예술에 큰 분기점이 된다. 이들 부부는 1947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함께 전시회를 개최했던 화가 부부다. 이들은 30년의 결혼생활 동안 17번의 전시회를 개최했다. 화업의 동반자이자 인생의 반려자였던 아내가 1976년 먼저 타계했다. 운보는 사별의 아픔 속에서 한국농아복지회를 설립하고, 운보의 집을 조성했다. 김진로 기자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운보의 집 안채 모습.
운보의 집 안채 모습.
거장의 예술혼이 오롯이 담겨 있는 운보의 집은 한옥과 조화를 이뤄 장관을 이룬다.
거장의 예술혼이 오롯이 담겨 있는 운보의 집은 한옥과 조화를 이뤄 장관을 이룬다.

반상훈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