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선거제 혼란 키워놓고 표 호소 수준 높아진 유권자 외면한 권력다툼 당선만 되면 그만이라는 정치판 우려

총선 투표일이 낼모레다. 뭘 보고 투표해야 하나? 매일 매순간 똑같은 얼굴들이 TV에 나와 목쉰 소리로 외쳐대지만 귓가로 스칠 뿐이다. 세상이 좀 나아질 것 같은 감이라도 잡혀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다. 큰절을 해가며 미안하다고 하지만 과연 진심일까? 미리 써온 것을 보고 읽는 식의 연설, 애매모호한 내용들을 떠듬떠듬 말하는 모습에서 어떤 열망이나 의지를 읽기 어렵다. 차라리 트럼프처럼 내용이야 어떻든간에 속시원하게라도 했으면 좋겠다. 지금 유권자들은 몹시 약이 올라있다. 그들의 감정이 어디로 튈지 예측불허다. 아무래도 무슨 이변이 벌어질 기세다. 여론조사가 약간의 시사점을 던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런 정도를 훨씬 능가하는 사태가 일어나지 않을지 두고 볼 일이다.

유권자들의 심사를 들쑤셔 놓고도 여야 모두 그처럼 당당했던 이유가 정말 궁금하다. 19대 국회는 안보와 경제를 팽개쳐 불난 집에 부채질한 국회고 한심했던 공천파동은 거기에 기름을 퍼부은 꼴이다. 위기 대처는커녕 위기를 더 심화시킨 국회와 정당이다. 몇 달치 월급이라도 반납하고 모두 국회의사당 앞에 엎드려 큰절이라도 수십번 하고 나서 선거마당에 나오기라도 했어야 했다.

공천과 선거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듯이 그들은 유권자들을 너무 몰랐다. 지금 우리나라의 유권자들이 어떤 수준인가? 인터넷, 스마트폰과 함께 살면서 모르는 것이 없다. 국내외의 정보와 뉴스를 시시각각 파악하면서 전문해설가 못지않게 정치사회 이슈들을 꿰뚫어 보는 수준이다. 정치인들을 지도자라고 상석에 모실 유권자들이 아니다. 인터넷 이전과는 전혀 딴판이다. 천지개벽에 버금가는 이 스마트유권자들의 놀라운 변화를 보지 못하고 권력 앞에서 머리나 조아리는 극소수의 덕담을 민심으로 파악했다면 완전 오산이다. 유권자의 수준과 판단력이 사상 최고도로 올라감에 따라 지금과 같은 공천방식과 선거제보다는 아예 추첨제가 나을 것이라는 비아냥도 나오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총선 이후다. 지금 국회의원 후보들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유권자들을 잘 모시겠다고 다짐하지만, 일단 당선되고 나면 별주부전의 토끼처럼 튈 것이다. 만나거나 통화하는 것부터 점차 어려워질 것이다. 그들의 최대 관심사는 권력과 돈의 세계다. 지역구는 4년 후의 일이다. 지역구보다 중요한 것이 중앙당이다. 다음 공천을 주는 곳은 지역구가 아니라 중앙당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선거가 끝나기만 하면 지역주민이 찬밥이 되는 이유다. 또 아무리 천재가 국회에 들어가도 바보와 거수기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런 철벽같은 엉터리 구조가 온존하는 한 온갖 기대는 허망하게 끝날 뿐이다.

선거 후 국회는 어떻게 될까? 여전히 답답한 곳이 될 것이다. 19대보다 더 답답한 곳이 될 공산이 크다. 제대로 하는 일은 없지만 연간 1인당 7억원의 유지비는 다 쓸 것이다. 국가위기는 강 건너 불이고 당장 내 앞에 큰 감 놓느라 바쁠 것이다. 내년이면 대선이다. 상대의 성공이 나의 실패라는 프레임 안에서 정치가 굴러갈 것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되는 상황이라면 몰라도 그런 일이 오기 전까지는 식물국회를 면치 못할 것이다. 여당이 과반수를 얻더라도 선진화법의 5분의3선에 걸려 여전히 아무 힘도 쓸 수 없다. 제3당이 협력하면 이 장벽을 깰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내부구조와 성분으로 보아 협조를 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야권은 야당통합과 대선후보 단일화문제로 계속 술렁일 것이고 국회의 비생산성은 높아질 것이다. 새누리당이 과반수에 미달한다면 야당 국회의장이 탄생할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되면 정치위기론이 대두될 것이다.

순천향대 대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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