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입국 추진 황금시절 옛말 정권따라 지원정책 들쭉날쭉 연구개발 매진할 환경 조성을

`집단행동의 논리`라는 책으로 유명한 사회과학자 맨서 올슨은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들이 당면하는 무임승차 현상을 이론화하여 경제학자임에도 정치학 이론에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민주주의의 주요 이론인 다원주의에 따르면 민주정치는 같은 목적을 공유하는 결사체들이 각각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경쟁하며 균형을 이루는 과정이다. 문제는 공동 목적을 지닌 개인들이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는 가정이다. 어차피 목적이 이루어지면 모두 혜택을 보기 때문에 굳이 자기가 나서지 않아도 혜택을 얻을 수 있다. 반대로 자기가 아무리 애써도 공동 목적 달성에 실패하면 남는 것은 헛수고한 시간 뿐이다.

올슨이 민주주의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의 시선을 갖게 된 것은 그가 대학원생일 때 읽었던 남부 이태리 어느 마을 유지 이야기에 기인한다. 이 사람은 그 마을에서 오랫동안 왕처럼 군림했는데 군주제가 최고의 정치형태라고 단언하면서 그 이유로 `집주인론`을 들었다. 즉 군주제에서 왕은 나라가 자기 것이기 때문에 더 잘 보살핀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과학기술인들에게 집주인론은 남 얘기같지 않다. 올해는 정부출연연구소의 모태인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설립 50주년이자 카이스트 설립 45주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설립 40주년으로 과학기술계에 여러 모로 뜻 깊은 해다. 덕분에 과거 수십년을 돌아보는 과학기술인들의 회고를 종종 접하게 되는데 공통된 지적은 예전이 더 나았다는 것이다. 그 예전은 바로 박정희대통령 시절이다. 우수 연구인력 확보를 위해 당시 국립대 교수 월급의 세 배에 이르는 200-400불의 월급을 주며 해외 한인과학자들을 유치하고 이들에게 주택은 물론 자녀 취학까지 편의를 제공했다. 뿐만 아니라 냉전이 심화되는 와중에 카이스트에 병역 특례를 제공하면서 서울대 공대 모학과 졸업생 오십여명 중 두 명을 빼고 모두 카이스트 대학원으로 진학했다는 일화도 내려온다. 아무튼 박정희대통령 재임 시기는 과학기술입국을 내걸고 과학기술인에게 파격적인 대우를 제공했던 황금 시절로 기억된다. 반면 대통령 단임제가 시작된 이래 5년마다 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바뀌면서 과학기술은 국정과제 미사여구에 단골 메뉴로 등장해도 실제로는 찬밥 신세라는 한탄이 많다. 이렇게 보면 과학기술 진흥에 관한 한 집주인론이 맞는 듯하다. 나라 지도자가 바뀌지 않고 오래 머물러야 족히 이십 년 걸리는 고급인재도 양성하고 수 년씩 지어야 하는 거대과학 시설에도 투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학기술 진흥을 위해 민주주의를 포기할 것인가. 놀랍게도 민주주의의 허점을 지적했던 올슨은 `노`라고 답한다. 그 이유는 그가 이태리 남부 마을 유지 인터뷰의 충격에서 삼십년이 지난 시점에 발표한 논문에 나와 있다. 민주주의와 독재 중 어느 체제가 경제 성장에 더 유리한가를 고찰한 이 논문은 정치체제와 경제발전 이론을 한단계 높인 역작이다.

집주인론의 허점은 집주인이라고 자기 집을 다 잘 가꾸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사실 박정희나 리콴유처럼 강력한 권위주의 리더십이 경제발전의 드라이브로 연결된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자기집이라 제멋대로 하는 독재자들이 더 많다. 일종의 사고실험으로 독재체제에서 자기집을 잘 가꾸는 집주인을 만날 확률을 최대 20%로 가정하자. 그러면 자기집이라고 맘대로 할 집주인을 만날 확률은 80%다. 만약 각각의 혜택과 피해를 (+20)과 (-10)으로 가정하면 독재체제의 성적은 0.2x(20)+0.8x(-10), 즉 (-40)이다. 거꾸로 민주주의에서는 80%가 뭘 좀 해본다고 하지만 잠깐 왔다가는 지도자들이고, 20%는 뭘 좀 했다가 말아먹는 경우다. 전자의 그저그런 업적을 (+10)로 보고 후자의 피해를 (-20)으로 보면 민주주의의 성적은 0.8x(10)+0.2x(-20), 즉 (+40)이 된다. 민주주의가 아무리 허술해도 철인정치를 펼칠 수 있는 독재자를 만날 확률이 적기 때문에 평균적으로 보면 민주주의가 낫다. 그러니 미워도 다시 한번 민주주의에 기회를 줄 수밖에. 김소영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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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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