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 강소기업 KMP… 국내 첫 4칼라 인쇄기 설치·6칼라 인쇄기 2대 보유 세계 캔제품 표면 40% 점유

한국경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청년실업률은 역대 최고치를 넘어섰다. 한국수출경제의 한 축을 담당한 조선산업은 불황과 부실에 휘청하고 있다. 전자와 반도체는 중국 등 후발주자의 추격세가 매섭다. 한국경제에 빨간불이 켜진 것은 맞지만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국내는 물론 세계시장에서 실력으로 경쟁해 당당히 선두에 올라선 히든챔피언, 강소기업들이 있기 때문이다. 충남 아산에도 있다. 한국 금속인쇄의 자부심, KMP(회장 이형집)이다.

◇주경야독으로 일군 창업의 꿈=분유캔, 우유캔 등 일상에서 캔(can)은 다양한 제품으로 만날 수 있다. 모양이나 상품 속 내용은 다르지만 공통점은 있다.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에서 접하는 캔 제품의 10개 가운데 4개는 캔 표면의 금속인쇄가 KMP를 통해 이뤄졌다.

KMP의 창업자 이형집(79·사진) 회장은 충남 청양에서 태어났다. 한학자 할아버지 아래서 천자문, 동몽선습을 익혔다. 가난한 집안 환경에 중학교 졸업 뒤 서울로 상경했다. 청운의 꿈을 품고 서울에 당도했지만 앞에 놓인 것은 가시밭길이었다.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야간고등학교에서 공부했다. 취업한 금속인쇄공장에서는 성실함으로 주변의 인정을 받았다. 작업시간 한 시간 전 출근해 작업준비를 하고 퇴근 시간을 넘겨 밤 늦게까지 일 했다.

평생의 반려자인 아내 신월현 여사와 만나 결혼도 했다. 전세금을 아끼려 신혼집은 공장 한 쪽 방에 차렸다. 절약을 감수한 이유는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공장의 다른 동료들이 익숙한 직장생활에 안주할 때 이 회장은 가슴 속에서 창업의 꿈을 키웠다. 이 회장은 "사람이 한 번 태어나 사업을 해야 성공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해보지도 않으면 기회조차 가질 수 없어 창업의 꿈을 한순간도 놓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결혼한 지 3년 만에 창업 자본금 50만 원을 마련해 직원 5명과 대성금속인쇄공업사를 설립했다. 사업초기 부족한 자금과 일거리로 힘들었지만 이 회장은 정직과 신용으로 위기를 돌파했다. 사훈도 인화단결, 신속정확, 창의개발로 정했다. 이 회장이 신용을 얼마나 중시했는지를 보여주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창업 후 한해가 지나 이 회장의 공장과 거래를 하던 철강 업체에서 전화가 왔다. 이 회장을 안다며 한 사람이 외상으로 물건을 가져 갈려고 하는데 잘 아느냐는 문의 전화였다. 이 회장은 그 사람과 한번 거래가 있었다고 말했다. 외상으로 거래한 사람이 부도 나자 전화를 했던 철강 업체는 이 회장에게 외상값을 물어내라고 요구했다. 이 회장은 본인의 신용을 믿고 외상을 준 것이라고 여겨 한마디 불평 없이 대금을 변상했다. 그 철강업체는 나중에 미안했던지 다른 거래가 생길 때마다 업체들에게 대성금속인쇄공업사를 추천했다. 덕분에 얼마 안가 대성금속인쇄공업사는 외상값의 수 십 배에 달하는 이익을 올렸다.

정직과 신용은 직원들에게도 지켰다. 이 회장은 직원들이 월급을 가져가야 가족들이 생활할 수 있다며 매출 부진으로 수익이 없으면 빚을 내서라도 직원들 월급을 하루도 미루지 않고 제 때 지급했다. 진심은 통해 직원들은 흔들리지 않고 일에 전념했다.

◇한국 금속인쇄의 새 역사를 쓰다=대성금속인쇄공업사는 1989년 대성강판인쇄(주)로 사명을 바꾸고 같은 해 아산시 둔포면에 공장을 신축했다. 경기도 이전도 검토했지만 고향인 충청도에서 고용을 창출하고 지역 발전에 이바지하고자 아산에 터를 마련했다. 대성강판인쇄는 그 뒤 대성엠피씨를 거쳐 2013년 12월 지금의 상호인 KMP로 바꿨다. KMP는 Korea Metal Printing의 약자이다. 약자에서도 느껴지듯 KMP는 국내 금속인쇄 분야의 1위 업체이다.

KMP가 걸어온 길이 우리나라 금속인쇄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KMP는 1996년 국내 최초로 4칼라 인쇄기를 설치했다. 2003년 6칼라 인쇄기 설치도 국내 최초이다. KMP는 2014년 6칼라 인쇄기를 한 대 더 도입했다. 국내 금속인쇄 기업 가운데 6칼라 인쇄기를 두 대 이상 보유한 업체는 KMP 밖에 없다. 라인 증설과 함께 KMP의 규모도 비약적으로 커졌다. 임직원은 성남사무소까지 합쳐 155명이 근무하고 있다. 매출은 지난해 400억 원을 달성했다. 올해는 매출 500억 원이 목표이다.

KMP 매출의 50%는 수출에서 발생한다. 2011년 5백만 불 수출탑 수상에 이어 지난해 11월 일천만 불 수출탑을 받았다. 수출지역도 유럽, 동남아, 아프리카 등 세계 각지이다. KMP의 기술력이 금속인쇄의 선진국이라고 하는 독일이나 일본에 비해서도 절대 뒤쳐지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KMP는 금속인쇄 분야의 세계적 기업 5위안에 속한다. 연구개발 역량을 높이기 위해 2012년 기업부설연구소도 설립했다. KMP에 시련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노사관계로 한동안 성장통을 겪었지만 화합으로 잘 극복해 성장세를 가속화하고 있다.

이 회장은 KMP를 세계적인 강소기업의 반열에 올려 놓는 한편 봉사에도 앞장섰다. 고향에 노인회관을 짓고 어려운 청소년들을 돌보는 이 회장의 봉사에 주민들이 감동해 청양에는 살아있는 이 회장의 공덕비가 두 개나 있다. 아산시기업체협의회 회장도 5년을 역임하고 국제라이온스 지구 총재로 사회봉사활동을 활발히 벌였다.

이 회장은 요즘 틈날 때마다 자서전 집필에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자서전에는 KMP의 자취 뿐만이 아니라 한국금속인쇄산업의 역사도 담을 계획이다. 출판 기념회는 내년 2월 예정하고 있다. 이형집 회장은 창업을 꿈 꾸는 젊은 기업인들에게 "사업 다각화도 좋지만 한 길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뚝심과 강한 정신력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며 `한 우물 정신`을 강조했다. 윤평호 기자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금속인쇄분야의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KMP(주)의 회사 전경 모습이다.  사진=KMP 제공
금속인쇄분야의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KMP(주)의 회사 전경 모습이다. 사진=KMP 제공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