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 무시한 계파 다툼 최저 투표율·불복 불보듯 최악 만큼은 피할 선택을

이 정도일줄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여야는 정치 드라마 1부 격인 4·13 총선 공천을 놓고 진흙탕 싸움을 벌였다. 친박(친박근혜)·친노(친노무현) 패권주의자에게 국민이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압권은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의 공천 여부였다. 명색이 집권당 원내대표를 지낸 유 의원은 치킨 게임을 마다하지 않았다. 공천관리위원회와 최고위원회간 폭탄돌리기는 갈 데까지 갔다. 수순대로 초대형 화약고가 터졌다. 당, 정확히는 친박의 고사작전에 맞선 유 의원은 돌아오지 않을 강을 건넜다. `배신의 정치`는 국민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까.

더불어민주당도 도긴개긴이다. `국민 눈높이`로 순항하는 듯 하더니 김종인 비대위 대표의 `셀프공천`으로 뇌관이 터졌다. 친노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총동원해 비판의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김 대표의 당무 거부, 비대위원 사의(辭意), 복귀를 거치면서 선거를 의식해 시한폭탄으로 남겨두는 정치력을 발휘했다. 눈가리고 아웅이다. `정치혁명`이라는 새누리의 상향식 공천이 기득권 유지라는 부작용을 낳은 것이나 더민주의 퇴행적 행태나 그게 그 거다. `욕하면서 따라 배운다`고 했다. 새정치를 지향한다는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여왕`(박근혜)·`차르`(김종인) 운운할 수 있는가.

조연급의 호연이 없지는 않았다. 새누리당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과 더민주 정청래 의원이 그들이다. 조 전 수석은 13표 차이로 석패한 뒤 당의 용산 차출을 거부했다. 경선에서 떨어진 서초지역 주민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변이다. 정 의원은 막말의 대명사로 비쳐졌지만 컷오프 뒤에는 달랐다. 백의종군을 선언하고 같은 당 후보 지원에 뛰어들었다. 이런 처신이 돋보이는 상황은 현실 정치의 후진성을 방증한다. 공천 과정에서 경선 불복과 폭력 사태, 탈당, 무소속 출마 같은 행태는 이전보다 훨씬 진화했다.

본격 선거전이라는 2막이 올랐지만 흥행을 기대하기 어렵다. 1부에서 봤듯 무엇보다 주연급 연기가 형편없다. 조선시대 품계로 치자면 유외(流外)가 딱 맞겠다. 유외는 정 1품에서 종 9품에 들어가지 못하는 잡직(雜織)을 지칭한다. 여의도를 왜 우리에게 빗대냐는 그들의 집단 항의가 걱정스러울 지경이다. 20여 년 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정치는 4류` 발언도 후했던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드는 요즈음이다. 당이나 후보들이나 제대로 된 정책·공약 제시는 뒷전이다. 당선에 혈안이 돼 있을 뿐 민생이나 경제활성화는 다른 나라 일이다. 이래저래 국민의 피로감이 쌓여간다.

정치 혐오는 결국 무관심으로 이어진다. 역대 최저의 투표율을 기록할 거라는 예상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이렇게 가다간 전국 단위 선거 중 가장 밑바닥이었던 2008년 총선 당시 46.1% 아래로 투표율이 곤두박질치는 건 불문가지다. 최선은커녕 최악의 선택으로 표심이 드러나면서 정치의 악성 바이러스를 더욱 유포시키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플라톤은 "정치를 외면한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라고 했다.

최소한의 양심과 염치가 있다면 후보자들도 유념해야 할 게 있다. 승복이다. 국민의 평가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라는 얘기다. 불복문화가 독버섯처럼 확산된 현실에서 개표 이후에도 딴지가 나온다면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단히 불행한 일이다. 합법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이 `식물`로 전락하는 것과 같은 사례가 되풀이돼선 안된다. 총선을 논란이 된 국회선진화법 같은 실타래를 담판 짓는 마당으로 만들어야 한다. 지휘한 이들은 결과에 따라 합당하게 움직이면 그만이다.

선거철이 되면 늘 떠오르는 말이 있다. `국민은 자신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는 프랑스의 정치철학자 알렉시스 도크빌의 지적이다. 사실, 총선에 더 적용되는 잠언일 수 있겠다. 또 하나, 이 참에 자기소개서에 지역구 의원의 이름을 기재할 것을 제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어렵다면 차악(次惡)을 고르자는 얘기다. 20대 의원 임기 4년 내내 막장 프로그램 3부를 볼 수 없겠기에 하는 말이다. 서울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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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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