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 수치만 맞춰 진행 상당수 겉돌아 각종 완화정책 쏟아져도 체감은 못해 추진기구 독립성 확보 특별법 모색을

지난달 말 끝난 제4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이 허사가 됐다. 2010년부터 무려 7차례나 추진됐지만 이번에도 신규 참여사업자들의 자금조달 계획에서 신뢰성이나 실현 가능성 부족 등이 문제됐다. 제4 통신사업자의 진출로 경쟁이 촉진되어 통신비 인하 등을 기대했던 국민들의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소비자의 통신비 부담이 과다해도 3개 통신사 체제나 요금 규제는 계속되고, 수입 술이 판을 쳐도 국내의 주류제조나 판매를 위한 면허요건은 까다롭기 그지없다. 이처럼 정부부문에서 과도하거나 불필요한 규제로 민간 기업의 활력을 저해하는 것이 바로 정부규제이다. 우리 경제의 근본문제 중 하나를 꼽으라면 정부규제인데, 등록된 총 1만 5000여 건 규제 중에서 폐지되거나 개선돼야할 규제가 부지기수이다.

그동안 정부는 규제개혁을 위해 온갖 노력을 다 기울였다. 대통령이 앞장섰고 각 행정부처, 지방자치단체들이 나섰다. 규제를 하향식으로 일괄 처리하는 `규제 기요틴`이라는 살벌한 명칭의 개혁방식도 추진했다. 최근 대통령은 "(규제를) 모두 물에 빠뜨려놓고 꼭 살려내야만 하는 규제만 살려 두도록 전면 재검토"하는 방식을 새로 제시하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경제현장에서는 규제개혁이 속시원하게 이뤄졌다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기업 활력이나 경쟁력이 회복됐다는 사례도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규제는 여전히 요지부동이라거나 규제 때문에 경제활동이 어렵다는 말만 커지고 있다. 왜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지 곱씹어볼 일이다. 그것은 규제개혁이 매년 연례행사처럼 추진됐지만 추진방법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현행 방식의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규제개혁을 추진하면서 규제를 담당하는 기관에게 지나치게 의존했다는 것이다. 매년 규제기관을 대상으로 `규제정비 지침`에 따라 정비계획을 제출토록 하고, 정비 목표를 설정해 이를 달성하도록 독려하는 방식을 계속했다. 규제기관이 스스로 알아서 규제개혁을 추진하라는 것이니 피규제 기업이나 국민이 원하는 규제가 풀리기 만무했다. 규제기관이 기득권을 과감히 포기하기보다는 지엽적인 규제를 형식적으로 개선하여 정비계획에 따른 목표수치만 맞춰나갔다. 규제개혁이 겉돌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둘째는 규제개혁 추진과제 선정이나 추진기구 구성 등에서 규제를 받는 기업에게 과도하게 의존하는 방식도 문제였다. 피규제기업은 나라 경제의 질서가 무너지거나 환경이 파괴되더라도 해당 기업의 이익에 장애가 되는 것을 우선적으로 없애려고 했다. 그러다보니 시장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필요한 규범을 규제라고 하여 개선대상 목록으로 만들었다. 예컨대 공정거래 질서 확립이나 환경보호를 위한 규범을 규제라고 하여 폐지하라고 요구했다. 물론 규제개혁 추진과정에서 피규제기업의 의견을 수렴하고, 기업 대표가 추진기구에 참여할 수는 있다. 그러나 과제 선정이나 추진기구 구성은 규제기관이나 피규제기업 모두로부터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진행돼야 한다는 원칙이 소홀히 다뤄졌다. 규제개혁에 대한 기업의 기대치만 높였고 실제 이뤄낸 것은 별로였다.

최근의 경제위기를 극복하려면 규제개혁이 무엇보다 긴요하고, 그동안의 규제개혁이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했다면 새로운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 시점에서 `규제개혁 특별법`을 제정하여 기존의 규제개혁 대상과제를 폐지하거나 개선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만하다. 이것은 각종 정부규제가 기존의 수많은 법령에 규정돼있으므로 신법으로 개혁하는 방식이다. 단지 몇 건의 과제라도 국민적 합의가 이뤄진다면 이를 개혁하는 신법을 우선 제정하고 추후에 다른 과제를 계속 추가해나갈 수도 있다.

오랑캐를 이용하여 다른 오랑캐를 제압하는 `이이제이(以夷制夷)` 처럼 규제개혁을 `이법제법(以法制法)`의 방식으로 추진하는 것이다. 규제개혁의 성과를 얻기 위해 추진방식을 획기적으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고려대 미래성장연구소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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