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을 노래한 대중가요로는 1959년 `안정애`가 발표한 트로트 곡 `대전 블루스`가 으뜸으로, 1963년 제작된 `대전발 0시 50분`이라는 영화 주제곡으로 알려진 김부해 작곡, 최치수 작사이다. 1999년에는 역 광장에는 노래비가 세워졌다. 1898년 경부선 철도 합동조약을 체결한 이후인 1904년에 일본인들의 거류를 돕기 위하여 지금 대동(大洞)에 목조로 간이역 수준으로 처음 역사가 개설되었다. 1928년 현 자리에 양측에 두개의 돔을 갖춘 중세 서구식 대전역사(목조/200평)가 낙성되었고, 1920년에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대전역 인도용 지하도가 개설되기도 하였다. 그러다 한국동란 때에 소실되어 임시건물을 지어 사용하다가 환도 후 미국 정부의 전쟁복구기금으로 시멘트와 스틸샤시 등을 지원 받아 1958년 착공하여 그 해 말에 준공하였다.

대전지역 현대건축의 중요한 시발점이 된 이 건물은 5m×6m의 기본 모듈에 충실한 입면의 구성과 조화로 각광을 받기에 충분한 건물이었다. 설계는 당시 철도청 건축과 시설계 직원이던 이상순(李商淳·대한건축학회 부회장 역임)씨로 국립 철도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에서 건축을 전공, 평소 꼴라쥬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던 것을 당시 26세라는 젊은 나이로 마음껏 기량을 펼쳐 놓게 되었다. 당시 교통부장관인 김윤기(와세다대학 건축전공)씨의 지시에 따라, Betel사의 방식대로 설계자가 직접 감리에 참여하여 직접 현장에 상주하면서 감리 업무를 수행하기도 하였다. 대합실의 넓은 벽면 상부에 조립식 패널식으로 꼴랴쥬를 제작하여 내부를 장식하였다. 그 후 입면이 점차로 변경되어 원래의 모습을 찾기가 힘들 정도였는데, 시공은 당시 국내5대 건설회사인 `아주토건`에서 시공하였다. 북측에 이용객이 휴식을 위하여 일반음식점(그릴)이 있었고 입구에는 커다란 V자형의 기둥에 떠받친 캐노피가 있었다. 이후 70년대 후반에는 남측으로 한 차례 증축되면서 하차객의 출구로 바뀌고 말았다.

1998년도에 본 건물이 빨강과 초록색 등 원색을 사용하여 화려한 치장을 마치면서 당초의 순박한 모습은 사라지고, 일본에서도 널리 알려진 `대전 블루스`의 어색한 몸짓만이 우리 곁에 남아 있다가, 2004년 3월 한국고속철도(ktx)가 개통되면서, 본 건물은 완전히 흔적조차 없어지고, 북쪽으로 수평 이동하여 현대적인 역사로 새롭게 개축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유병우 씨엔유건축사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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