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의 관행적인 결정이 구체적 현실에서는 때로 부당한 경우가 있다. 어느 당사자의 절망스런 한마디가 귀에 선하다. "먹고 죽으려 해도 없는데 어쩌라고요."

민사소송법에 의하면, 판결로 금전지급을 명하는 경우 가집행을 허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데, 법원은 승소한 원고에게 가집행의 조건으로 담보를 제공하게 할 수 있다. 패소한 피고가 상소하는 경우 가집행에 의한 강제집행의 정지를 신청할 수 있는데, 법원은 담보를 제공하게 하거나 담보를 제공하게 하지 않고 강제집행을 정지하는 결정을 할 수 있고, 담보는 현금 대신 보증보험증권을 제출하도록 할 수도 있다. 그런데 현재의 실무는 판결에서 가집행을 선고하면서 원고에게 담보를 제공하게 하는 경우는 전무한 반면, 피고가 항소해 강제집행의 정지를 신청하는 경우에는, 판결금 전액과 지연이자에 해당하는 금액을 전부 현금으로 공탁하도록 하고 보증보험증권으로 대신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판결에 대한 높은 신뢰, 원고의 채권집행의 확실성과 편의, 피고의 상소권 남용이나 채무면탈 방지 등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그러나 하급심 판결이 상급심에서 취소되는 사례가 적지 않으며, 가집행의 정지를 위한 담보는 `그 강제집행의 일시정지 때문에 원고에게 발생할 수 있는 손해의 배상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지 판결금 채권의 집행 자체를 확보해 주기 위한 것도 아니다. 원고가 결국 승소하더라도 그 판결금 채권으로 담보공탁금을 출급할 수는 없고, 피고의 담보회수청구권을 압류하는 우회적인 방법이 가능할 뿐이다. 또 상소심의 심리기간 동안 가집행을 일시 정지하는 것 때문에 원고에게 발생할 수 있는 손해가 하급심의 판결금 전액이 될 수 있는 경우는 상상하기도 어렵고, 실제로 가집행이 부당하게 정지되었음을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사건도 찾아보기 어렵다. 즉, 가집행의 일시 정지를 위해 판결금액 전부를 담보로 제공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현금이든 보증보험증권이든 원고의 손해를 담보하는 기능에는 차이가 없으므로 현금으로만 공탁해야 할 이유도 없다.

반면, 상급심에서 하급심 판결이 취소되더라도 가집행으로 인한 피해는 사실상 회복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판결금을 공탁할 능력이 없는 피고가 소중한 유산인 시골집을 경매당하고 그 집에서 평생을 살아온 노모가 강제로 내쫓기는 충격으로 혹여 무슨 일이라도 생겼다면 그 한을 어찌 하겠는가?

법원이 법률적용의 전문가이지만 사실관계까지 제대로 파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고, 당사자들은 판결에 나타난 사실인정의 오류만큼은 뚜렷이 알고 있으며 특히 억울해 한다. 피고는 그러한 억울함을 읍소하며 항소하였지만, 항소심 판결을 받기까지는 오랜 시일이 걸리고 그 동안 하급심판결은 그 당부에 관계없이 커다란 힘을 발휘하며 피고의 급여나 하나뿐인 생활공간 등을 앗아가고 가족들의 생계까지 위협하기도 한다. 가집행을 허용하거나 그 일시정지를 위한 담보제도가 원고의 채권집행의 확실성이나 편의 보장으로만 치우지지 아니하고, 피고의 읍소나 억울함, 경제적 형편 등도 충분히 헤아리는 방향으로 운용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고춘순 법무법인 베스트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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