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IS 위협 두고만 볼 건가 국민안전·재산보호엔 뒷짐 테러방지법안 뭉개는 국회

상상은 현실을 조롱한다. 예언은 오늘을 짓누른다. 영화 `쉬리`가 그랬고,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가 그랬다. 1999년 개봉한 `쉬리`는 액체폭탄을 둘러싼 한국형 블록버스터다. 축구장을 배경으로 북한 특수 8군단과 대한민국 정보기관 사이의 긴박한 대결이 백미다. 초록색 폭탄이 터지려는 찰나 이를 제거하는 정보요원의 눈빛이 생생하다. 경기를 관람하던 한국의 대통령과 북한 위원장이 경기장을 빠져나가며 곤혹스러워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16년 뒤인 지난해 11월 파리 축구장에서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프랑스 대 독일의 친선 경기가 열린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자살폭탄테러 시도가 있었다. 축구를 지켜보던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궁색하게 자리를 떴다. 관중들은 영문을 모른 채 겨우 몸을 피했다. 끝이 아니었다. 동시에 파리 시내 7곳에서 테러와 인질극이 발생했다. 무차별 총격과 자폭테러로 무고한 시민 124명이 숨졌다.

곧이어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가 인도네시아 쇼핑몰의 외국인 관광객을 공격했다. 전형적인 소프트 타킷(Soft Target)이다. 유럽과 미주뿐 아니라 아시아가 공격 대상이 됐다는 게 충격적이다. 한국 관광객이 희생되지 않았다고 한숨 돌릴 일이 아니다. IS는 매뉴얼을 만들어 자생적 테러리스트 `외로운 늑대`의 테러를 부추긴다. 앞서 IS는 "한국 등 60개국이 전쟁의 화염에 불탈 것"이라고 선전포고를 했다.

테러는 이미 우리 생활 깊숙이 침투했다. 최근 청와대를 사칭해 발송된 다량의 이메일 발신지는 북한 해커의 계정으로 확인됐다. 북의 사이버테러 타깃이 된 농협 전산망은 서버 절반이 파괴되고 복구에 18일이나 걸린 바 있다. 소형무인기 드론을 매개로 한 테러 역시 발등의 불이다. 이렇듯 테러는 현실과 사이버상에서 일상화되다시피 했다. "한국이나 일본도 안심할 수 없다"(이집트 테러전문가 아흐메드 칸딜 박사)는 경고는 무얼 시사하는가.

급망증(急妄症)이 고질화된 우리로선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는 게 급선무다. 테러에 관한 한 체감 공포지수가 0이다. 하지만 한국은 `십자군 동맹` 62개국 명단에 들어 있다. 중동에서 미국과 서유럽의 대외 정책과 호흡을 맞추고 있어 더할 나위 없는 먹잇감이다. 국내 곳곳에 미군 시설이 들어서 있다는 점에서 주공격 대상이 될 수 있는 구조다. 여기에다 분열과 갈등이 심하다 보니 `외로운 늑대`가 자라날 음습한 환경을 갖췄다. 복면 같은 극력시위에 무방비라는 점도 마음에 걸리는 대목이다.

테러 경계와 대비를 제대로 하려면 법과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 테러방지를 위해 입법화를 추진한 게 벌써 15년째다. 16대 국회부터 법석을 떨었지만 얻은 건 없다. 테러 방지에 총력을 다하는 선진국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및 G20(주요 20개국) 중 37개국이 테러방지법을 갖고 있다. 테러를 막기 위해서라면 감청이나 계좌추적이 불가피하다고 용인한다. 국민 안전과 재산 보호라는 명제가 최우선이라는 이유이자 증거가 아닐 수 없다.

공교롭게도 인천국제공항 4개 보안관문이 14분만에 뚫리는 사건이 터졌다. 중국인 2명이 면세구역에서 출국장에 들어가 출입문을 뜯고 밀입국했다. 나흘 동안 천안까지 돌며 활개치고 다녔다. 5년 동안 국내에서 일한 외국인 7명이 출국한 뒤 IS에 가입했다는 뉴스도 있었다. 그런데도 여야는 테러방지법 하나 만들지 못하고 있다. 컨트롤 타워를 국무총리실에 두는 쪽으로 겨우 합의하나싶더니 국정원의 정보수집 권한을 놓고 다투고 있다.

영국 일간지 더 선은 최근 노스트라다무스가 `IS의 유럽 일부 장악`을 예언했다는 기사가 페이스북을 통해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500년 전 예언이 오늘을 짓누르는 걸 보며 테러방지법의 조속한 입법화를 촉구한다. `고잉 다크`(Going Dark)라는 말이 있다. 감시 두절 상태로 장막 뒤의 유령과 싸워야 한다는 의미다. 1982년에 만들어진 대통령훈령 제 337호로는 국민 생명도, 국가도 지키지 못함을 알라. 송신용 서울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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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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