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 王 錫 글雲 米 그림

무산의 창꾼들중에서는 보통 나이가 들고 노련한 창꾼은 열칸창을 날렸고 젊고 힘이 센 창꾼은 다섯칸창을 던지거나 찔렀다. 열칸창이란 20m이상의 거리를 두고 멀리 날리는 창이었으며 거리가 멀면 창은 약간의 포물선을 그리면서 날아가 사냥감에 꽂혔다. 다섯칸창이란 10m이내의 가까운 거리에서 던지는 창이며 그저 창은 바로 직선으로 날아가 사냥감은 명중되었고 그게 성공하지않으면 창꾼은 육탄전으로 들어가 창으로 바로 사냥감을 찔렀다.

열칸창은 안전성이 있었다. 첫번창을 날린 다음 두 번째 창을 날릴 여유가 있었고 그곳도 여의치않으면 후퇴할 수도 있었다. 그에비하면 다섯칸창은 위험성이 있었다. 창꾼이 창을 날릴 기회는 한번뿐이며 그게 여의치않으면 사냥감과 육탄전을 벌려야되는데 그때 사냥감이 맹수인 것 같으면 사냥꾼이 죽을 수도 있었다.

노련한 창꾼들은 그건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 화는 무모한 싸움이라면서 젊은이들에게 경고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나이든 창꾼들이 쓰는 열칸창은 실패할 경우가 많다고 반박했다. 사냥감이 범이나 곰같은 맹수일 경우에는 그들이 먼 곳에서 포물선을 그리면서 날라오는 창을 앞발로 쳐내버린다는 말이었다.

노련한 창꾼도 그런 가능성이 있다고 시인했으나 창이 여러개 연달아 날아가면 그중의 하나는 사냥감에 치명타를 주거나 큰 부상을 입힌다고 말했다.

그래도 노련한 사냥꾼들은 마록등의 싸움터로 나가 거기에 끼어든 불곰사냥을 하여 두 마리를 잡았다. 다섯칸창을 날리는 젊은 사냥꾼들도 역시 불곰 한 마리를 잡았으나 사냥꾼 한사람이 불곰의 앞발치기에 걸려 어깨의 뼈가부러지기도 했다. 목숨에는 이상이 없었으나 몇 달동안 누워있어야할 중상이었다.

그렇게 곰 세 마리나 한꺼번에 잡히자 포수마을에서는 관례에따라 잔치가 열렸다.푸짐한 곰고기가 이웃마을에까지 배달되었고 10리나 떨어져있는 주막에도 배달되어 주막에 들어온 나그네들이 배부르게 곰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무산의 불곰은 나무꾼이나 약초꾼 숯들과 이웃사람들까지 살상하는 맹수였으나 그렇게 사람들의 푸짐한 먹이도 되기도 했다.

그러나 가을이 짙어지면 무산의 산림에서는 불곰들이 살아져 갔다.곰들은 겨울 첫눈이 내리기전에 겨울잠을 잘 바위굴 흙무덤굴 나무굴에 들어가야만 했다.

또한 그때쯤되면 마록들의 싸움도 끝나 싸움에서 이긴 수컷들이 수십마리나 되는 암컷들을 거느리고 의기양양하게 돌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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