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경쟁 사회로 등 떠밀린 아이들 구체적 이유없는 막연한 진로설정 미래 목표보다 목적 먼저 생각해야

어머니는 과수원을 하셨다. 과수원 일의 90%는 어머니가, 나머지 10%는 아버지와 자식들인 내 형제들이 도운 정도이니 어머니가 과수원을 하신 셈이다. 어머니는 새벽같이 일어나 일을 한 차례 하고 밥을 지으셨고, 저녁 먹은 설거지까지 끝내고는 빨래를 하거나 바느질을 하셨다. 농사와 가사를 다 감당해내야 했다. 나 같이 시골에서 자란 베이비부머 세대는 거의 비슷한 어머니의 일상을 보며 자랐을 것이다.

그런 어머니에게 행복은 무엇이었을까? 어머니는 내게 한 번도 `이런 것이 행복`이라고 말씀 한 적이 없다. 내 눈을 깊이, 오래 바라보던 기억은 떠오른다. 흐뭇해하시던 얼굴이다. 어머니에게 희망은 무엇이었을까? 빚 없이 농사를 짓게 되는 것, 농사를 짓지 않아도 풍족하게 살 수 있는 것? 자식들이 공부를 잘해 고시에 합격하거나 좋은 직장에서 일하게 되는 것? 내 어머니에게 가장 큰 희망은 자식들이 `잘 되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판사가 되거나 공무원이 되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평소에 하던 어머니의 말씀으로 비추어 보면 `잘 되는` 것은 타인에게 손가락질 당하지 않고 타인에게 빚지지 않고 사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짓던 과수원과 밭엔 봄부터 가을까지 꽃이 피었다. 가난했지만 어머니의 중노동으로 우리 형제는 온갖 과일을 먹으며 자랐다. 온갖 꽃들이 자라 꽃 피고 열매 맺는 것을 보며 자랐다.

어머니가 짓던 과수원은 20여 년 전에 다른 이에게 팔렸다. 자식들은 고향을 떠났고, 연로해진 어머니는 더는 과수원 농사를 지을 수 없어서 였다. 그 과수원은 지금은 사람 다니는 길조차 없어진 맹지가 됐다. 어머니로부터 과수원을 산 이는 돈을 불릴 목적으로만 과수원을 매입했을 것이다. 그에게 땅은 돈이었고 돈을 더 불려줄 수단이었을 것이다. 수단이 통하지 않는 시점부터 주인은 바뀌지 않았을 것이고, 지금 그에게는 애물단지일 것이다.

요즘 부모들은 아이들을 학교가 파하면 곧장 학원에 보낸다. 모두가 1등을 향해 무한히 경쟁하고 그것을 당연하다고 여긴다. 그렇게 1등이 된 아이들의 미래는 행복할까? 부모들은 스스로에게 물어 보면 좋겠다. `우리 아이를 왜 학원에 보내지?` 내가 20대쯤엔 거의 모든 아이들이 주산학원에 다녔다. 요즘 아이들의 대부분은 주산이 무언지, 주판이 어떻게 생겼는지,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모른다. 지금의 아이들이 학원에서 배우는 것이 20년 후에는 전혀 사용되지 않을 수 있다. 그래도 여러 학원에 다니게 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초중등 교육 현장에서 진로지도가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진로지도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은 `꿈`인 것 같다. 그래서 대개 첫 질문이 "네 꿈이 뭐니?"다. `의사`, `야구선수`, 등 직업으로 대답하는 학생들이 많고 구체적 목표가 있으니 진로설정이 잘 되어 있는 것으로 여기는 이들도 있다. 꿈이, 직업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의 목적이었으면 좋겠다. `병을 앓는 사람을 고쳐주거나 도와주고 싶은 목적`이 있다면 의사가 될 수도 있고, 약사, 간호사가 될 수도 있다. 약을 개발하는 연구원이 될 수도 있고, 환자의 돌봄을 제공하는 사회복지사가 될 수도 있다. 병원에서 사용하는 각종 의료기구를 제조하는 제조업자가 될 수도 있다.

어머니에게 과수원은 자식들을 `잘 되게` 하려는 수단이었다. 자식들이 `잘 되는` 것을 위해 어머니는 새벽부터 과수원과 밭을 정성을 다해 일구었다. 어머니가 우리 형제들에게 바랐던 `잘 되는`것은 땅을 통해서 였다. 어머니에게 땅은 자식과 같은 것이었다.

과수원이 어머니에게 자식의 `잘 되는` 것을 위해 사용됐을 때와 어떤 이에게 과수원이 돈을 불릴 투기의 수단으로 사용됐을 때, 과수원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나는 목도하고 있다. 나는 가끔 어머니를 회상한다. 그리고 내가 하는 일에 대하여 생각한다. `내가 이 일을 왜 하지?` 내 아이에게는 이렇게 말한다. "직업을 꿈꾸지 마라. 네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꿈꿔라. 그럴 때마다 `왜?`인가라고 물어라."

최재권 나사렛대 생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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