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사는 일이 모든 것의 전부처럼 인식 참된 생활의 근본이 무엇인지 진지한 고민 인문학적 사고로 삶을 돌아보며 살아야

서울대 국문과 방민호 교수
서울대 국문과 방민호 교수
필자가 몸담고 있는 대학계에서는 새해 벽두부터 범상치 않은 일이 진행되고 있다. 나라와 한국연구재단 같은 곳에서 주도하는 일로, 프라임 사업과 코어 사업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앞의 것은 인문학 계열 학과를 줄이거나 통폐합해서 이과, 공과 쪽의 비중을 높이는 구조조정이 핵심이다. 뒤의 것은 그런 식으로 모든 대학의 인문학을 줄여 놓기만 할 수는 없으니, 몇몇 대학의 인문학은 집중 지원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겉으로 보면 두 사업이 상호 보완적이고, 또 곤궁한 처지에 빠진 대학생들의 미래를 위한 처방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두 사업에는 간과하기 쉬운 중요한 전제가 작용하고 있다. 인문학은 이과학이나 공과학에 비해 긴급하지 않고 부차적이라는 것이다. 또, 그래서 대학생들의 취업률을 높이는데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두 사업은 우리 사회 전체를 이과, 공과 중심적 체계로 재편하려는 움직임에 관계되어 있고, 그 이면에는 경제, 곧 먹고 사는 일이 모든 것의 처음과 끝이라는 사고가 작동하고 있다.

새해부터 우리 사회의 경제화를 알리는 크고 작은 소식들이 들린다. 예를 들어, 신문들은 저소득층의 엥겔지수가 자꾸 높아져 전례없는 비율을 기록했다고 전한다. 엥겔지수란 전체 지출비에서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중을 말한다. 따라서 이 지수가 높아짐은 사람들이 생활을 영위해 나가는데 필수불가결한 지출에 매달리고 있다는 뜻이 된다.

또 다른 소식도 있다. 우리나라 고소득층들 중에서도 자신이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절반 가까이나 된다는 것이다. 경제가 안 좋아지면 가계 규모가 큰 사람도 압박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주위의 다른 사람도 돌아보는 시선의 여유는 필요할 텐데 상위 계층이 그런 미덕을 잃어버린 것이다.

결국 필자는 불안하다. 올해도 먹고 사는 경제의 문제가 우리들의 정신을 사로잡아버릴 것 같은 위기감이 솟는다. 먹고 사는 것이야말로 사람살이의 근본인데 무슨 소리냐고 반문할 분들이 많겠다. 하지만 사람이란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그 처방은 두 가지일 것이다. 하나는 이른바 그 경제를 낫게 만들어 각 개인들, 가정들의 소득을 올리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이 먹고사는 일 외의 것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여지가 커질 것이다. 다른 하나는 우리의 생각의 체질을 바꾸는 것이다. 먹고사는 일만이 우리 삶의 전부가 아님을 끊임없이 되새김질 해서 돈을 아껴 책을 사고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되는 것이다. 경제만이, 먹고사는 일만이 중요하다고 따지는 풍토에서는 정작 그 경제가 좋아져도 삶의 다른 차원을 상상하지 못한다. 무엇보다 우리의 생각의 방향이 달라져야 한다.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된지 보름이 넘었다. 하루하루가 가파르게 흐르는 우리들 삶의 시간이다. 하지만 올해는 총선거가 있기 때문에 시간은 더 정신없이, 가파르게 흐를 것이다.

이런 정치적 격랑의 시절에도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고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근본적 질문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가 삶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일 때에도 삶의 총체성에 대한 질문을 버리지 않아야 한다.

최근에 필자는 `서정시학`이라는 잡지의 시인들과 함께 포항 구룡포 기행을 하게 됐다. 물회도, 대게도 먹는 풍성한 여행길이었다. 그러나 더욱 좋았던 것은 그 여행길에 겨울바다를 본 것이다. 이때 어느 시인 한 분이 올해 신춘문예 이야기를 꺼냈다. 이번에 당선된 작품들은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분의 의견은 사실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필자는 지난 해부터 계속된 문학 침체와 논란을 떠올렸다.

작가 신경숙 씨가 일본 우익 작가의 소설을 표절했다는 데서 촉발된 논란은 출판계, 문학계를 몹시 위축시켰다.

인문학이니, 문학이니 하는 것은, 필자가 그 여행길에서 본 겨울바다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우리를 진정한 사람살이로 이끈다. 그것이 없으면 우리들의 삶은 아무리 풍성해도 가난을 면치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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