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의 남쪽에 펼쳐진 주산은 보문산(寶文山)이다. 해발 457.6m이며 주봉은 시루봉으로 예전에는 `최고봉`이라 했는데, 언제부턴가 이름이 바뀌었다. 대전에서 자라면 어릴 때부터 단골 소풍장소로 알려진 친근한 앞산으로 이곳을 오를 때면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는 산 너머에는 누가 살고 있나 궁금했다.

시내에서 보문산을 중구 안영동(장수마을 옆) 쪽으로 오월드를 지나 연고개를 넘으면 `무수천하마을`이 있다. 무수동 초입으로 들어서면 우선 안동권씨 종가댁이 단아한 모습으로 반겨준다. 그 길을 따라 돌다보면 무수들을 지키는 초가지붕의 정자인 광영정(光影亭)과 나란히 서있는 두 고목이 못가에 자리하고 있어 더욱 멋스런 풍경을 자아낸다. 잠시 머물다 고개를 들어 오른편 산자락을 바라보면 바로 유회당(有懷堂)과 기궁재(奇窮齋)가 양지바른 언덕에 보인다. 이 이름은 조선시대 영조 때의 공신인 권이진(權以鎭)의 호에서 유래하며, 묘소가 놓인 낮은 야산 기슭에 사괴석 담장을 만들고 건물을 서남향으로 배치해 선친의 묘에 제사를 지내고 독서를 하면서 지내기 위해 지은 집으로 앞뜰에 있는 `활수담`이라는 연못이 특이하다. 바로 옆 기궁재는 묘소 관리를 위한 재실로, 일대가 모두 경사가 급한 대지에 세운 배치의 감각이 돋보인다. 유회당을 거쳐 바로 뒷산으로 향하는 좁은 길을 따라 10여 분 오르내리다 보면 여경암(餘慶菴)과 거업재(居業齋)에 이른다. 이 건물들은 후손과 후학들의 교육장소로 건립, 거업재는 서당으로 사용했다.

보문산 남쪽을 산내 쪽으로 들어가 보면 알 수는 없지만 구한말 삼일천하를 누렸던 김옥균의 탄생지인 이사동이 있다. 안으로 들어보면 길가에 나란히 있는 4칸으로 구성된 일자형의 은진송씨 승지공파재실과 ㄱ자형 평면의 월송재(月松齋) 앞을 지나게 된다. 후손들이 지금도 거주를 하고 있기에 살아있는 전통가옥으로 집의 짜임새가 꽉 찬 느낌이 드는 문화재자료이다. 더 들어서면 이 마을의 입향조인 송성준이 송촌에서 옮겨 온 사우당(四友堂)에 이른다. 송시열의 묘비를 쓴 송국택의 재실로 여러 겹의 부연이 달려 공작같이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대문의 낡은 모습과 인근 우물에 메어 달린 도르래를 씌운 기와지붕아래, 자신의 호인 한천(寒泉)이라는 글씨가 눈에 설다. 우암 송시열이 생전에 부채로 가리며 보지 않은 보문산을 향해 후손들이 보낸 화해의 손짓 같기도 하다.

유병우 씨엔유건축사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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