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동안 입었던 법복을 벗고 변호사로 새 출발한지 1년이 돼 간다. 나름 큰 변화였기에 주변에 조언을 청하기도 했지만 듣기에 불편한 참견도 없지 않았다. 법복을 벗기 전에는 `부장판사까지는 하고 개업을 해야 알아준다(단독판사 경력으로는 별 볼일 없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는 말을, 변호사가 된 뒤에는 `아직도 판사의 때를 씻지 못했다`는 말을 어렵지 않게 들었다. 물론 농담이 섞인 말들이 분명했지만 그 속에 든 골(骨)에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법원의 문턱을 밟게 된 사람들 중에는 판사와 변호사가 같은 학교 출신, 연수원 동기 등의 연(緣)을 배경으로 사건의 향방이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담당 판사에게 유효적절한 변호사`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나를 찾는 의뢰인들 중에도 소위 `전관예우`라는 것에 은근한 기대를 가지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다. `부장판사까지는 하고 개업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조언에도 유사한 생각이 깔려있는 것 같다. 적어도 내가 겪어 본 법원은 어떠한 연(緣)이나 전관(前官)이라는 부정한 관념이 기생하고 있는 곳이 아니었다.

물론, 의뢰인들은 법원과 사법절차에 문외한이며 감당하기 어려운 궁지에 처하여 조금이라도 더 나은 결론을 기대하는 절실함이 있고, 그러한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도 아니다. 다만, 연이나 전관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으로 오해되고, 증거와 법리를 찾아내고 설득력 있는 변론으로 의뢰인의 정당한 권리를 보호하고 찾아주는 법률전문가로서의 노력과 역할이 제대로 주목받지 못한다는 것, 그러한 노력에 대한 보수는 아깝게 여기면서 판사와의 관계나 전관이라는 허상에 대한 대가라면 적지 않은 돈을 지불하려는 용의를 내 비추는 현실이 안타까운 것이다.

1심에서 사기죄로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피해액을 전혀 변제하지 않은 것에 비추어서는 비교적 선처를 받은 사안에서, 돈이 있으면서도 변제액과 형량을 저울질하며 피해를 배상하기 보다는 많은 성공보수를 주겠다며 어떻게든 형량만 낮추어 달라고 주문하는 영악한 사람을 만날 때면 씁쓸한 모욕감을 느끼기도 한다. 피해를 일부라도 변제하면 그 정상이 십분 참작될 수 있도록 돕겠지만, 피해를 변제하지 않겠다면 오히려 전관이기 때문에 변론하기 어렵다며 돌려 세웠던 일로, 아직 `판사의 때를 씻지 못했다`는 걱정 어린 충고를 듣기도 했다.

편견 없이 의뢰인을 변호하고 대변해야 하는 변호사의 소임을 생각하면 새겨들어야 할 말이지만, 법관으로 근무한 이력으로 잘못된 관념에 편승해 돈을 쫓고자 하는 생각은 없다

변호사가 판사와의 관계나 전관이라는 허명으로 선택받지 아니하고, 전문성과 노력으로 인정받는 사회가 바람직한 법치사회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전관변호사가 설자리는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고, 오히려 전관예우라는 오해나 비판 대신 법관으로 근무하며 얻은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어느 판사를 막론하고 순수하게 유효적절한 변론을 하는 떳떳한 변호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피나는 노력을 해야겠지만 말이다. 고춘순 법무법인 베스트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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