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수록 주변을 보는 시야 축소 축적된 경험만 믿는 속단에서 비롯 마음을 관찰하는 수행의 자세 필요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고 느끼는 것이 혼자만의 생각은 아닌 것 같다. 어떤 이가 30대는 시속 30킬로미터로 가지만 40대는 시속 40킬로, 50대는 시속 50킬로로 간다고 비유하니 옆에 있던 이가 40킬로, 50킬로가 아니라 4백킬로, 5백킬로 같다고 허세 섞인 추임새를 넣는다. 왜 나이가 들수록 세월이 빨리 가는 것일까.

사람들은 주관적 감정에 따라 시간이 가는 속도를 다르게 느낀다. 마음이 맞는 사람과 차를 마시며 잡담을 하고 있다면 시간은 훌쩍 지나가고 어려운 사람과 의례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다면 시간이 더디 간다. 설레는 마음으로 외국 여행을 떠날 때,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는 공항 대합실에서의 한두 시간은 지루하지 않지만 이메일을 잠깐 확인하려고 컴퓨터가 부팅되기를 기다리는 1,2분은 무척 길게 느껴진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거나 즐거운 상황일 때는 시간이 빨리 가고 원치 않는 일을 하거나 어려운 상황일 때는 시간이 더디 가는 것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젊을 때는 싫어하는 일을 억지로 하여서 시간이 더디 가고 나이가 들면 좋아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시간이 빨리 간다고 느끼는 것인가? 직장에서 은퇴하여 크게 하는 일이 없는 이들도 세월이 빠르다는 것에 주저 없이 동의하는 것을 보면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일반적으로 시간은 하루 24시간, 1년 365일로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다고 여긴다. 하지만 그 시간은 자전과 공전과 같은 지구의 운동,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해와 달의 운동량에 불과하다. 해와 달의 운동은 다른 물체에 비해 규칙성과 반복성이 강하여 예로부터 시간을 재는 척도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본래 시간이란 실재하는 것이 아니고 나의 운동량과 변화 정도를 측정하기 위한 상대적 기준일 뿐이다. 비유하면 내가 차를 타고 달릴 때 주변에 아무런 경치가 없으면 나의 속도를 가늠하기 어렵듯이 해와 달의 운동은 내 변화속도를 가늠하게 해주는 주변 경치가 되는 것이다. 시간이란 내가 타고 가는 차와 주변 풍경이 변화하는 관계와 같다. 내가 탄 차가 빠르게 가면 주변 풍경이 빠르게 지나가고 이때 우리는 시간이 빨리 간다고 말한다. 그런데 풍경이 빠르게 지나간다는 것은 우리가 그 풍경을 띄엄띄엄 본다는 의미이다. 나이가 들면 주변 사물이나 상황을 대충 보는 경향이 생긴다. 대부분 겪어보았던 일이어서 결과가 예측되기 때문이다. 어린 아이들이 아빠의 생일날 깜짝파티를 하여 기쁘게 해주겠노라 준비할 때 이런 파티를 여러 번 겪어본 아빠는 아이들의 부산한 움직임에서 눈치 빠르게 무엇을 하려는지 알아버린다. 새롭다는 음식을 먹어 보아도 이미 먹어본 맛이거나, 오히려 어릴 때 먹던 그 맛보다 못한 경험이 몇 차례 쌓이면 주변에서 맛있는 집이라고 추천해도 시큰둥하게 된다. 보고, 듣고, 맛보는 것들이 대부분 이미 경험했던 것이어서 새로운 감동을 찾지 못하게 되면 점차 사물을 대충대충, 띄엄띄엄 보게 된다. 부인의 모습을 힐끗 보고 판단하기 때문에 머리 스타일이 바뀌어도 알아보지 못한다. 음식을 먹을 때 앞 사람이 "너무 짜네."라고 말한 뒤에야 찬찬히 맛을 보고는 "정말 짜네" 하고 동의한다.

불교에서는 이를 사물을 여실하게 보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끄집어내어 보는 것이라고 한다. 길가에 장미꽃이 예쁘게 피어있어도 실제의 장미를 보는 것이 아니라 형태만 힐끗 본 뒤 "이것은 장미야"라고 기억이 말한다. 이렇듯 사물의 일부분만 대충 보고 나머지는 기억에서 꺼내어 보충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서 관찰되는 현상이지만 나이가 들수록 강화되는 경향이 있다. 사물을 대충대충 본다면 나중에 기억이라는 영사기를 돌릴 때 풍경이 매우 빠르게 지나가게 되므로 시간이 빠른 것으로 느껴진다. 하루하루는 천천히 지나가는데 1년을 회고해보면 별 기억되는 것이 없으므로 빠르다고 생각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시간을 좀 천천히 흐르도록 하기 위해서는 대하는 사물을 띄엄띄엄 보지 말고 찬찬히, 그리고 섬세하게 볼 필요가 있다. 이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는 의도적인 연습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불교에서는 이를 `마음을 관찰하는 수행(修行)`이라고 부른다. 세월이 천천히 가도록 하려면 마음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거나, 아니면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그래서 대충대충 할 수 없는 새로운 일에 도전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최기표 금강대 불교문화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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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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