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은 철도 교통요지로 경부선에 호남선이 분기되면서 인위적으로 시작된 계획도시이다. 대전이 근대적 도시로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은 구한말부터로, 고려시대에는 회덕군으로, 조선시대에는 회덕현과 진잠현으로 불렸다.

1892년부터 시작한 경부선 노선 선정에서 1900년 실시한 제4차 답사에서 중간기점이 최단거리인 직선으로 이을 경우 속리산을 통과하는 어려움 때문에 계룡산 옆으로 우회시키며 노선의 구배와 공사 난이도를 따지고, 전통 마을을 비켜 대전을 통과하는 노선으로 결정된다. 이로써 대전은 군사적으로 수도 서울과 가깝고 호남의 곡창지대와 쉽게 연결되는 곳으로 부각된다. 이후 1905년 경부선철도 대전역이 개통되고, 1912년 호남선이 분기되면서 근대적인 도시로 본격적인 형성이 시작하였다.

기록으로 살펴보면 현재 대전 초기에 세워진 건물 중에 조적조(벽돌조)로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건물은 1912년에 신축된 옛 동양척식(주) 대전사옥(동구 대전로 733/인동)인데, 현재는 개인소유로 일반점포로 사용되고 있으며 보존상태도 그리 좋지 않다.

단독주택으로는 1929년에 세워진 중구 대흥동에 있는 `뾰족집 <등록문화재 제377호>`이고, 그 다음해인 1930년에 세워진 `성산교회 목사관<옛 대전전기(주) 사택/등록문화재 제164호>`이다. 하지만 2010년도에 뾰족집은 대흥동 재개발 구역 안에 있어 갈등을 겪다가 이축을 핑계로 해체되었고, 설상가상으로 다음해인 12월에 성산교회 목사관은 화재로 소실되고 말았기에 현재로는 두 건물이 모두 없다. 다행히 뾰족집이 대종로 건너 남부장로교회 골목(문창로 119-15)에 이축 하여 복원하여, 대전에서 가장 오래된 주택으로 형태를 유지하고 있으나 그 의미가 조금 꺼림직 하다. 또한 대전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는 1921년 세워진 목동에 있는 `거룩한 말씀의 수녀회 성당`을 들 수 있다. 이 성당은 당시 세워진 여러 성당을 참고로 하여 세운 덕에 유럽 중세 성곽에서나 볼 수 있는 첨탑을 소유한 아름다운 자태를 하고 있는데, 한국동란 때는 인민군 치안본부로 쓰이면서 양민학살과 아일랜드 선교사가 2명이 순교한 현장이기도 하다. 이 후 1958년 목동성당으로 부활되어 1968년부터 거룩한 말씀의 수녀회로 양도되었는데, 1969년에 대수선을 하여 대전에서는 가장 원형 보존이 잘된 근대 건축물로 남아 있다.

유병우 씨엔유건축사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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