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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당선작] 디타의 토요일 임아라 作

2016-01-01기사 편집 2016-01-01 05:0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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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사진1임아라

토요일을 기다렸다. 토요일에 토요일을 만나네. 나는 흥얼거렸다. 노래 가사 같아서 자꾸 흥얼거렸다. 나는 토요일이라는 단순한 닉네임을 비웃었다. 닉네임은 또 다른 이름이니까 매력적으로 지어야 했다. 나는 동경하는 스트립 댄서의 이름에서 두 글자를 골라 닉네임을 지었다. 디타. 부르기도 좋았다.

나는 자그마한 매표소 구멍에 동전을 들이밀었다. 가지고 있는 전 재산으로 풍선껌을 샀다. 나는 은박지를 찢기 위해 껌을 씹었다. 껌을 입에 넣으면 은박지가 남고 그것을 잘게 찢을 수 있었다. 버스정거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할머니가 내 짧은 치마를 보면서 혀를 끌끌 찼다. 나는 보란 듯이 은박지를 도로에 뿌렸다.

약속시간이 훌쩍 지났는데도 그가 오지 않았다. 그가 나타난 것은 마지막 껌을 입에 넣었을 때였다. 나는 택시를 보자마자 그가 토요일이라는 걸 알았다. 그의 말대로 택시는 노란색이었다. 네가 디타니? 그가 나에게 물었다. 나는 대답을 하는 대신 껌을 뱉었다. 보도블럭에 떨어진 껌은 새똥 같았다. 타. 나는 냉큼 택시에 탔다. 택시가 출발하자 은박지 가루가 사방으로 퍼졌다.

"덥지 않아요?"

나는 땀에 젖은 앞머리를 넘겼다. 그가 버튼을 누르자 에어컨이 작동했다.

"몇 살이니? 어려보이는 데 대학생인 거 맞아?"

그가 캐묻는 것 같아서 나는 불쾌했다.

"그러는 아저씨는 돈 줄 수 있는 거 맞아요? 택시가 꼬질꼬질한 게 돈 없어 보이는데?"

이번에는 그가 불쾌해했다. 택시 안의 공기가 차가워졌다. 백미러에 매달린 커피콩 자루가 대롱거렸다.

그가 건물에 딸린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갓 지은 것 같은 하얀 건물은 인적이 드물고 한적했다.

"우리 확실하게 하자. 그래야 탈이 없지."

그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나는 꼬깃꼬깃 접힌 서류를 그에게 건넸다. 그는 나의 신분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그것들을 챙겼다.

"우선, 집에 들어가자."

차에서 내리자 다시 땀이 쏟아졌다.

"이씨, 가을인데 왜 이렇게 더워."

나는 바짝 마른 낙엽을 밟으면서 투덜거렸다. 그가 재빠르게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5층의 가장 끝에 있는 506호가 그가 마련한 집이었다. 그가 숫자를 누르자 멜로디가 울렸다. 현관 앞에 바로 욕실이 있었다. 변기 앞에 세면대가 있었다. 싱크대와 방이 같이 있는 원룸이었다. 보일러가 있는 베란다에는 커다란 창문이 있었다.

"아직 새집 냄새가 나네. 당분간 고생을 해야 할 거야."

그가 말했지만 나는 선뜻 집 안으로 발을 딛지 못했다. 나는 내 집, 내 방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이 집이 내 집, 내 방은 아니지만 어쨌든 심장이 요동쳤다.

"생필품을 사두긴 했는데 빠진 게 있을 지도 몰라. 메모해두었다가 알려주면 사줄게."

그가 방 한 가운데에 작고 동그란 상을 펴고 앉았다.

"어때? 결정했니?"

나는 신발을 벗고 그 앞에 앉았다.

"네."

그가 기뻐하며 통장을 내밀었다.

"선금이야. 일이 성사되면 나머지 금액을 줄게. 걱정하지 마. 전에 밝혔지만 난 여자가 있어. 그녀가 널 만날 준비가 되면 소개해줄게. 아이만 낳으면 네 맘대로 해. 갈 곳이 없다면 이 집에서 살아도 좋아."

나는 앙칼지게 쏘아붙였다.

"떠날 거예요."



우리의 계약사항은 이랬다. 토요일은 디타에게 계약금의 절반을 선금으로 지불하고 출산일까지 머물 수 있는 집을 제공한다. 디타는 출산일까지 기본적인 생활비를 제공 받고 지인과 연락하거나 만나지 않는다. 디타가 임신을 하면 토요일의 여자와 삼자대면을 하고 그간의 관계를 멈춘다. 디타가 출산하면 토요일은 계약금 잔액을 지불하고 계약을 완료한다.

일주일 후부터 그가 집에 들렀다 갔다. 정해진 날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언제든지 원하는 때에 왔다. 그는 일을 하듯이 의무적으로 나를 안았고 일이 끝나면 죄를 지은 사람처럼 허둥지둥 옷을 입고 사라졌다. 그런 모습이 나를 자극했다. 내가 느낀 쾌감이 죄스러워서 나는 더욱 뻔뻔해졌다. 나는 여간해선 옷을 입지 않았다. 찜찜해서 견딜 수 없을 때까지 씻지 않았고 허리가 아플 때까지 누워있었다. 그것은 모종의 시위였다. 그는 내가 어떤 상태여도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천장을 쳐다보면서 지루한 시간을 견뎌냈다. 형광등을 보고 있다가 눈을 감으면 커서 같은 얼룩이 어둠 속에서 깜빡거렸다. 나는 두 팔을 들고 키보드를 두드리듯이 손가락을 구부렸다. 서른다섯, 택시운전기사, 토요일. 이것이 내가 그에 대해서 아는 전부였다. 우리는 불법사이트에서 만나 가벼운 정보만 교환했었다. 나는 그에게 나를 설명하고 싶었다. 나는 옷을 만들었다. 옷을 입지 않는 여자가 아니었다. 변명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외로워서 그를 자주 떠올렸다.

나는 매일 거울 앞에서 표정을 감추는 연습을 했다. 그에게 반가워하는 기색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연습을 하던 어느 날, 통통하게 살이 오른 내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마지막 생리일이 기억나지 않았다. 내가 임신한 것 같다고 하자 그가 밝게 웃었다. 나는 그의 얼굴에 침을 뱉고 싶었다. 입안에 침이 가득 고였다. 이제 그녀를 소개해줄게. 내가 왜 너를 선택했는지 아니? 그가 고백했다. 그녀의 이름도 디타거든.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경박한 웃음에 그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토요일의 그녀를 만났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검은 스커트를 입은 그녀는 그보다 키가 컸다. 나는 그녀의 큰 키에 놀랐고 스커트 자락 아래로 보이는 큰 발에 더 놀랐다. 안녕, 그녀가 수줍게 인사했다. 나는 놀란 티를 내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집으로 걸어가는 동안 나는 그와 그녀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그들의 뒷모습은 이상하고 진지했다.

그녀가 과일을 깎는 내내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그녀의 하얀 블라우스에서 금방이라도 단추가 뜯어질 것 같았다. 굴곡 있는 몸매에 비해 그녀의 얼굴은 수수한 편이었다. 옅은 화장이 잘 어울렸고 쌍꺼풀이 얇았다. 특히 볼록한 이마와 콧대가 예뻤다. 다정하게 사과를 나눠먹는 그와 그녀를 위해 자리를 비켜주고 싶었지만 방이 한 칸뿐이어서 갈 곳이 없었다. 나는 귤을 까먹으면서 괜히 방을 한 바퀴 돌았다. 현관에 가지런히 놓인 그녀의 에나멜 구두가 반짝였다. 그 구두는 오토바이가 밟고 지나가도 망가지지 않을 것처럼 굳건해보였다. 옆에 놓인 그의 허름한 운동화를 지켜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는 종종 집에 와서 과일을 깎았고 구석의 싱크대에서 그릇을 씻었다. 그녀가 다녀가면 좁은 방이 넓어 보일 정도로 환해졌다. 그녀는 널브러진 물건을 정리하고 방바닥을 반질반질하게 닦았다. 내 옷을 빨아서 널어두었고 마른 옷을 개켜서 옷장에 넣었다. 국을 끓이고 반찬을 만들어서 내 입맛을 가늠하기도 했다. 어쩌다 대화를 할 때면 짧게 했다. 필요한 거 있니? 없어. 그걸로 끝이었다. 그녀는 뭔가 더 묻고 싶은 것처럼 입술을 달싹거렸다. 나는 그녀의 질문을 피해 다 읽은 만화책을 들췄다. 그러다 저녁이 되면 그녀가 슬며시 단화를 신고 집에서 나갔다.

그녀의 단화를 보면 그녀가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작아지기 위해 애쓰는 것 같았다. 넓은 어깨를 움츠렸고 생머리를 고수했고 하이힐을 신지 않았다. 언젠가 도톰한 스웨터를 입은 나에게 그녀가 말했다. 부러워, 정말. 나는 그녀에게 답례했다. 난 가슴이 작잖아. 그녀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내가 입은 스웨터를 만지작거렸다. 그녀의 손길이 배에 닿을 때마다 나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 뱃속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나를 데리고 외출을 하곤 했다. 나는 근방의 포장마차에 가는 걸 가장 좋아했다. 그와 그녀는 소주로 추위를 잊었고 나는 오동통하게 불은 어묵을 씹었다.

우박이 내렸다. 비닐에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했지만 통쾌했다.

"우리도 포장마차나 할까?"

그녀가 플라스틱 테이블을 두드렸다. 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 때문에 그녀의 말을 듣지 못한 그가 엉뚱한 소리를 했다.

"빈속에 술 마시면 속 버린다니까."

그가 그녀의 잔에 담긴 소주를 대신 마셨다.

"장사나 하자구!"

그녀의 굵은 외침이 귀를 먹먹하게 했다.

"호모새끼들."

옆 테이블의 중년남자가 우리를 향해 침을 뱉었다. 중년남자의 일행이 일제히 낄낄거렸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무렇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들뜬 기색이었다.

"날 알아봤나봐. 그렇지?"

그녀의 볼이 발그레했다. 그는 서둘러 계산을 하고 그녀를 억지로 택시에 태웠다. 나는 택시 안에서 역류하는 어묵을 몰래 삼켰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수군거리면 그녀는 자신을 알아본 것이라며 기꺼워했다. 그녀의 착각은 직업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녀는 퀴어 월드라는 카바레의 댄서였다. 도시 외곽에 있는 그곳은 규모는 작았지만 흥미로운 볼거리로 유명했다. 사람들은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몰려와서 트랜스젠더들이 만들어낸 조촐한 무대를 구경했다. 무대의 가장자리에 그녀가 있었다. 그와 나는 항상 앞자리에서 공연을 보았다. 끈적끈적한 바닥에서 비릿한 냄새가 났다.

잠깐이지만 매일 연습하니 실력이 늘 법한데도, 그녀의 춤은 그대로였다. 그녀에게는 매력적인 외모로 시선은 끌되 춤은 추지 않아도 되는 역할만 주어졌다. 능숙한 댄서들이 익숙한 노래에 맞춰 입을 벙긋거렸다. 그녀는 어두운 구석에서 흐느적거리다가 음악이 절정에 이르면 무대에서 내려와 사람들 사이를 가로질렀다. 엉덩이에 푸른 깃털이 달린 의상을 입은 그녀는 공작처럼 화려했다. 그녀가 긴 속눈썹을 과장되게 깜빡거리면 사람들이 넋이 나간 듯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는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자랑스러웠다.



나는 그녀에게 춤을 가르쳐달라고 졸랐다.

"난 댄서이지만 춤은 추지 않잖아."

그녀가 나를 핀잔했다.

"하긴 그 정도는 나도 출 수 있을 것 같아."

내 대답이 그녀를 웃게 했다. 그녀가 서랍에서 반짇고리를 꺼냈다. 그리고 파란색 실크 드레스를 수선했다. 나는 모조 보석이 박힌 가면을 쓰고 벽에 걸린 거울 앞에 섰다.

"왜 댄서가 된 거야?"

나의 물음에 그녀는 바느질을 멈췄다. 거울 속에 비친 그녀의 눈빛이 아득했다.

"공작이 꽁지깃을 펴면 마치 눈처럼 생긴 무늬가 쫙 펼쳐지잖아. 날 따라다녀. 그 수많은 눈들이."

그녀가 일을 그만둔 건 그가 손찌검을 시작한 후부터였다. 그녀의 퇴근을 기다리면서 한두 잔 마시던 그의 주량이 한두 병이 된 것이 화근이었다. 꼭 술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나는 그의 잠재된 질투를 퀴어 월드에서 예감했었다. 공작의 꽁지깃처럼 그녀를 에워싸고 있던 시선과 잿빛이 되어가던 그의 얼굴. 나는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 아무도 그녀의 춤을 사랑하지 않았다.

그는 술에 취하면 나를 투명인간 취급했다. 내가 헛구역질을 해도 듣지 못한 것처럼 굴었다. 나는 불을 끄고 벽에 달라붙었다. 마블링 같은 벽지를 오래 보고 있으면 어지러워서 잠이 오지 않았다. 그녀는 어김없이 그를 쫓아왔다. 그녀의 입술에 검붉은 피가 굳어 있었다.

그가 그녀를 때리는 모습은 무성영화 같았다. 그는 말없이 그녀를 노려보다가 소주잔을 내려놓고 그녀의 뺨을 후려쳤다. 그러고는 스스로 소주를 따랐다. 그의 마른 팔이 바들바들 떨려서 소주가 잔 밖으로 흘렀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신음을 참아냈다. 나는 그녀가 바라는 대로 귀를 닫고 모른 척 했다. 그리고 기다렸다. 기다리는 게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그가 쓰러져서 디타, 하고 불렀다. 우리는 그의 부름이 멈추기를 기다렸다.



디타, 디타, 토요일의 디타. 재즈풍의 음악이 흐른다. 조명이 코르셋을 입은 디타를 비추면 관객석이 고요해진다. 간혹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릴 뿐이다. 디타는 둥글납작한 원판 위에 맨발로 서 있다. 디타가 원판 한가운데 있는 봉을 향해 다가간다. 위를 향해 곧게 뻗은 봉은 길고 투명하다. 디타가 걸을 때마다 허벅지 근육이 굼틀거린다. 봉을 잡고 춤을 추는 디타의 자태는 황홀하다는 표현으론 부족하다. 디타의 굴곡진 몸매가 직선인 봉과 비교되어 더욱 매혹적으로 보인다. 디타가 다리로 봉을 감았다 풀고 봉에 등을 기대었다가 허리를 굽힌다. 디타가 유연하게 허리를 펴면 원판으로 쏟아졌던 붉은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흐트러진다.

디타가 사다리를 타고 오른다. 관객은 사다리에 오르는 디타의 엉덩이를 주시한다. 가터벨트를 한 디타의 다리가 매끈하다. 사다리 끝에는 빙빙 도는 팽이 모양의 유리잔이 있다. 유리잔 안에서 연붉은 칵테일이 넘실거린다. 디타가 유리잔으로 들어가서 눕는다. 코르셋에 연붉은 칵테일이 스며든다. 춤을 추는 디타의 몸이 젖는다. 디타가 가터벨트를 풀고 코르셋을 벗는다. 서서히 조명이 어두워지고 검붉은 커튼이 무대를 가린다. 관객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디타, 디타, 토요일의 디타. 음악이 끝난다. 뒤늦게 박수가 터진다.



나는 스트립 댄서 디타의 무대영상을 질리도록 되돌려 보았다. 어려서부터 디타는 나의 우상이었다. 디타는 어린 시절 방직공장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무대의상을 직접 제작했다. 그리고 한 번 입은 의상을 무대에서 내려오자마자 불태웠다. 칵테일에 젖은 의상은 통조림통 안에서 활활 타올랐다. 매캐한 연기로 가득한 대기실에서 디타는 혼자 무슨 생각을 했을까.

"디타를 알아?"

정적이 흘렀다.

"어제 그가 디타라고 불렀잖아."

내가 연이어 물었다. 그녀는 어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방을 말끔하게 치우고 가스레인지에 물을 올렸다. 물이 끓자 주전자 뚜껑이 들썩거렸다. 수증기 때문에 텔레비전 화면에 뿌연 물방울이 맺혔다. 그녀가 모과차가 담긴 머그잔을 건넸다.

"입덧에는 이게 좋대."

나는 그녀의 갈라진 입술을 올려다봤다. 그녀는 내게 얼른 마시라는 시늉을 했다. 그러고는 내 어깨를 주물렀다. 차가운 벽에 기대어 잤더니 어깨가 아팠던 참이었다. 등 뒤에서 그녀가 읊조렸다.

"디타가 아이를 낳고 싶어 했다는 거 아니? 디타는 세 번이나 결혼했는데 아이를 갖지 못했어. 임신을 했다가도 번번이 유산하고 말았지. 유산을 한 후 깊은 슬픔에 빠져 무대에 오르지 않았는데, 그 때마다 남자들이 디타를 떠났어. 헤픈 당신은 평생 아이를 갖지 못할 거라는 악담을 퍼부으면서. 디타는 남자들이 떠나고 나면 더욱 대담한 무대를 준비했지. 그들이 후회할 만큼 아름다운 몸을 보여주겠다고 공표하면서."

더 듣기를 원했지만 그녀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길게 말한 것이 처음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녀의 볼이 붉어져 있었다. 그녀의 굵은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나는 모과차를 입안에 머금었다. 상큼한 향이 코끝에 풍겼다. 그녀는 카디건을 걸치고 스카프를 메고 있었다. 그때 뱃속에서 태동이 느껴졌다. 나는 냉큼 그녀의 손을 내 배에 얹었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나는 오래도록 그녀의 손을 붙잡고 있었다.

내 배가 눈에 띠게 부풀자 그는 쉬지 않고 택시를 몰았다. 내게 주기로 한 잔금을 모으기 위해서였다. 그는 택시에서 쪽잠을 자고 삼각 김밥으로 끼니를 때웠다. 덥수룩해진 그의 수염과 누런 치아를 보고 손님이 거북해하면 그제야 집에 들러 면도를 하고 이를 닦았다. 그는 가끔 과일과 간식을 잔뜩 사들고 왔다. 그녀가 냉장고를 채우고 있으면 그가 둥근 내 배를 힐끗 훔쳐봤다. 그가 내 배를 볼 때 나는 다른 곳을 보는 척했다. 그의 시선이 조금이라도 배에 머물기를 바라서였다.

그는 그녀가 나와 함께 있는 것을 만족스러워했다. 그녀가 정말 임신을 하고 집에서 쉬고 있다고 착각하는 지도 몰랐다. 그녀가 퉁퉁 부운 내 다리를 주무르고 있으면, 그는 행복한 표정으로 지켜보다가 아쉬워하며 출근을 했다. 그가 저녁 늦게 출근하는 날이면, 그녀도 퀴어 월드로 출근했다. 비밀이야. 그녀가 내게 부탁했다. 나는 바느질을 하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녀가 사다준 새틴으로 무대의상을 만들었다. 한눈에 봐도 고급스러운 원단이었다. 나는 새틴을 볼에 비비면서 촉감을 만끽했다. 옷장 깊숙이 넣어두었던 가방에서 반짇고리를 꺼냈다. 육각형의 반짇고리에는 종류별로 정돈된 바늘과 색상별로 말아진 실, 자수로 만들어진 골무가 들어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어울리는 드레스를 디자인하고 그녀의 치수에 맞게 천을 재단했다. 가위로 천을 자르면 쓸 데 없는 생각이 잘려나가는 것 같고 바늘이 천을 뚫고 지나가면 답답했던 내 가슴이 뚫리는 것 같았다. 일렬로 촘촘히 박힌 실을 하나씩 매만지면 평온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녀가 내가 만든 의상을 입은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그녀는 진정한 디타였다.



터널을 지나 무난히 달리던 노란 택시가 갑자기 핸들을 꺾었다. 마치 무언가를 피하려는 것처럼. 택시는 난간을 부수고 구르고 굴러서 개천에 처박혔다. 납작해진 택시 안에서 그는 즉사했다. 움푹 파인 두개골에서 피가 쏟아졌고 오른쪽 발목이 불에 타서 떨어져 나갔다. 맑은 날씨였다. 안개가 껴있었지만 시야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을 정도였다. 도로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까맣게 탄 타이어자국만 남아있었다.

사고 소식을 전하는 그녀의 덤덤한 어투는 다소 위악적이었다. 그녀도 누군가에게 전해 들었을 그 현장을 지체 없이 내게 전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그녀의 잔잔한 분노가 고이는 걸 지켜보았다. 그것은 넘쳐서 내게로 전해졌다. 그녀는 마치 복수하듯이 그날을 반복해서 이야기했다. 되뇔수록 이야기는 길어졌다. 그녀는 새로운 장면을 덧붙이고 그의 심리를 묘사하더니 급기야 자신이 사고 현장을 직접 보았다고 여겼다.

"그를 가로막았던 걸 분명히 봤어. 뭔지 모르겠지만 아주 작고 흐릿했어. 그가 그냥 지나쳤어도 그것은 다치지 않았을 거야. 그런데 그가 겁을 먹고 도로에서 벗어난 거야."

나는 그가 그녀를 데리러 가는 길에 사고를 당한 거라고 말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그녀는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굳이 그것을 확인시켜주고 싶지 않았다.

 그녀를 데리러 가지 않았더라도 그는 교통사고로 죽었을 것이다. 그는 택시 운전 기사였고 대부분의 시간을 도로에서 보냈으니까.

 그날 새벽, 그가 상기된 얼굴로 집에 들이닥쳤었다. 그는 신발을 벗지도 않고 방으로 들어와 나를 잡고 흔들었다.

 "디타, 디타는 어디 있어?"

 그의 손바닥에 있는 굳은살이 쇄골에 닿았다. 나는 실로 오랜만에 그의 체온을 느끼고 있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놀라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다짜고짜 내가 만들던 옷을 빼앗아 찢었다. 옷은 결을 따라 북북 잘도 찢어졌다. 찢어진 옷에서 튀어나온 실밥이 뽑힌 새털처럼 흩어졌다.

 "너를 만나고부터 디타가 변했어!"

 그의 눈이 번들거렸다.

 "너! 너 까짓 게 뭐라고! 우리가!"

 그는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면서 소리쳤다. 배가 단단해졌다. 나는 본능적으로 배를 감싸고 뒤로 물러났다.

 그가 가리키는 건 내가 아니라 뱃속의 아이였다. 그가 내 치마를 올리고 팬티를 내렸다. 그가 의무적으로 안았을 때에 비할 수 없는 엄청난 모욕감이 나를 뒤덮었다. 나는 동물처럼 울부짖었다. 내가 내뱉는 울부짖음은 굵고 묘했다. 그가 내게서 떨어졌다. 달려 나가는 그의 등이 멀어졌다. 내 등 아래에는 반짇고리가 뭉개져있었다.

 

 그녀는 그의 장례식에 가지 못했다. 병원에서 마주친 그의 가족들이 그녀에게 간청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온종일 멍하니 하늘을 내다보면서 혼잣말을 했다. 우리 아들을 사랑한다면 당장 이곳에서 나가요. 그의 어머니가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면서 매정하게 속삭였을 것이다. 저런 변태랑 살겠다고 형이 집을 나갔던 거야? 그의 남동생이 혐오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욕했을 것이다.

 나는 그녀 곁에서 옷을 만들었다. 다행히도 원단이 충분히 남아있었다. 약간 수정했을 뿐 거의 같은 디자인의 옷이라서 손이 빨랐다.

 그녀를 살피면서 만드느라 손가락이 바늘에 찔리곤 했다. 손가락에 맺힌 핏방울을 혀로 핥으면 배에서 진통이 느껴졌다. 진통은 점점 강도가 세지고 규칙적으로 왔다. 참기 힘들어졌을 때 그녀를 부르려고 했다. 나는 바늘을 놓고 잠시 고민했다. 나는 그녀를 불러본 적이 없었다. 난 언제나 그녀를 부르지 않았다. 호칭이 없어도 대화할 수 있었다.

 "병원에 가야겠어."

 일어서자 양수가 터졌다. 따뜻한 물이 내가 만들던 그녀의 옷을 적셨다. 나는 가랑이 사이로 흐르는 양수를 내려다보았다. 그녀가 황급히 담요로 나를 감싸 안고 택시를 불렀다. 나는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녀와 흘러내리는 담요를 꽉 부여잡고 차분히 밖으로 나갔다. 발밑에서 낙엽이 부서졌다. 가을이 새로이 찾아왔다는 걸 실감했다.

 "지어둔 이름은 있니?"

 그녀가 물었지만 나는 침묵했다.

 "아들이든 딸이든 상관없이 부를 수 있는 이름은 어때?"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름을 뭐라고 짓든 그게 뭐가 중요해?"

 내가 쌀쌀맞게 대꾸했다.

 "중요해."

 그녀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름을 부르는 게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곧 알게 될 거야."



그녀가 출근을 하면 나는 캄캄한 방에 혼자 남았다. 나는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른 가슴을 문지르면서 벽에 붙여진 너절한 포스터를 응시했다. 교묘하게 다리를 꼰 디타가 가슴을 훤히 드러낸 채 호화로운 침대에 누워 있었다. 첫 번째 유산을 겪은 디타의 심경과 함께 잡지에 실린 사진. 잡지에는 검정색 테이프로 유두를 가린 사진이 실렸다. 불현듯이 디타의 기사를 읽고 싶어졌다. 나는 책장에 꽂혀 있는 잡지를 모조리 뒤져서 그 기사를 찾아냈다. 복귀 쇼를 마친 후라서 흥분한 디타는 과감했다. 나는 디타의 요염한 목소리와 몸짓이 생생하게 녹아있는 인터뷰를 읽었다.

 

 "디타, 당신의 쇼가 연일 매진을 기록하고 있어요.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름다운 걸 보고 싶은 거죠. 공개적으로."

 "사람들이 벗은 몸을 보고 싶어 한다는 건가요? 공개적으로?"

 "뭐가 잘못 됐나요?"

 "보통 벗은 몸은 숨기려고 하고, 비공개적으로 보려고 하죠."

 "(웃음) 당신은 비공개적으로 벗은 몸을 보는 것을 즐기나요?"

 "……."

 "당신도 벗지 않나요? 무엇을 위해 벗죠?"

 "디타는 무엇을 위해 벗죠?"

 "난 이런 생각을 하면서 벗어요. (장갑을 벗으며) 무엇을 위해 벗을 것인가? (장갑을 둥그런 테이블에 올려놓으며)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벗는가? (모피코트를 벗으며) 나는 무엇을 위해 벗는가? (모피코트를 기자에게 건네며) 벗고 있으면 알게 되죠. (검은 원피스의 어깨끈을 내리며) 사람들은 누구나 벗는다는 걸. (검은 원피스가 일그러진 채 디타의 발목에 걸쳐졌다.) 나는 좀 더 많은 이들 앞에서 벗는 것뿐이에요. 나를 위해."

 

 나를 위해. 나는 중얼거리면서 잠옷을 벗었다. 웃옷에서 젖내가 났다. 기지개를 펴자 팔꿈치에 모빌이 닿았다. 알록달록한 모빌은 하염없이 헛돌았다. 걸을 때마다 우스꽝스러운 소리를 내는 장난감이 발에 차였다. 처음 이 방에 발을 딛었을 때도 이렇게 좁았던가. 다섯 걸음을 걸으면 시금한 냄새가 나는 싱크대 앞이다. 나는 노란 기름이 둥둥 떠 있는 상한 미역국을 개수대에 부었다. 나는 미역국을 좋아하지 않는다. 미끈거리는 미역을 씹고 삼키는 상상을 하자 구역질이 났다. 구역질을 참기 위해 침을 삼키면서 고개를 흔들자 현기증이 났다. 주저앉아서 텅 빈 흔들침대를 관조하다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토요일이었다. 나를 깨운 것은 그의 눈이었다. 눈을 뜨자마자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건너편 옥상에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도 누운 채로 그의 실루엣을 보았다. 그의 모습이 그림처럼 어스름한 새벽노을에 물들었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나는 알몸이었다. 이불로 몸을 감싸고 창가로 다가갔다. 붉은 담뱃불과 검은 구름, 망연한 그의 눈빛이 가까워질수록 선명해졌다. 불쑥 언제부터 나를 보고 있었냐고 그에게 묻고 싶어졌다. 그가 뒤돌아섰다. 그의 등은 회색이었다.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그를 찾았다. 그를 찾아서 무엇을 할 작정은 아니었다. 단지 그가 누구인지 궁금했다. 그가 누구인지 알게 된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는데도 그랬다. 나는 주변 건물을 샅샅이 살폈다. 창문들은 하나같이 굳게 닫혀 있었다. 창문을 열고 사는 건 나뿐인 것 같았다. 거리는 한산했다.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 소음이 나직하게 들려왔다. 저 아래 골목에서 고양이가 쓰레기를 뒤지고 있었다. 벽을 타고 오르는 넝쿨 때문인지 풋내가 났다. 나는 그를 찾을 수 없었다. 그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다.

 

 문이 열리고 그녀가 들어왔다.

 "벌써 일어난 거야?"

 그녀는 술에 취해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그를 꿈꿨다고 털어놓았다. 그녀는 그보다 먼저 나를 깨우지 못한 것을 자책했다. 그리고 나를 위로해주었다. 위로 받을 만한 일은 아니라고 말했지만 그녀는 나를 꼭 안아주었다. 막상 그녀와 체온을 나누니 편안해졌다.

 "사람을 기억할 때 꼭 얼굴을 떠올리는 건 아니야. 그냥 그 사람을 기억하는 거지. 너는 그를 기억하고 있어."

 횡설수설하지만 단호한 말투였다. 나는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녀의 말을 여러 번 곱씹었다. 그녀가 냉장고를 열고 맥주를 집어 들었다.

 "너는 아름다웠을 거야. 하지만 그가 본 것은 그저 너의 몸일 뿐이지."

 그녀가 나에게 건배를 청하듯이 맥주병을 흔들었다. 나는 쭈그리고 앉아서 그녀가 쥐어준 비스킷을 잘게 부쉈다. 흐트러진 머리카락, 모로 누워 겹쳐진 두 팔, 늘어진 가슴과 배, 풍만한 허벅지와 엉덩이, 창백한 피부. 나는 그가 보았을 나의 몸을 머릿속에 그려 보았다. 시선에서 자유롭고 긴장하지 않은 무방비 상태의 몸. 나는 아름다웠을까. 나는 그런 몸을 본 적이 있었던가.

 옷 벗는 소리가 들렸다. 나지막이 들려오는 그 소리가 나를 나른하게 했다.

 "가하야."

 그녀가 나를 불렀다.

 "그가 주기로 했던 잔금, 내가 입금했어."

 나는 듣지 못한 체 하면서 이불을 끌어당겼다. 비스킷 가루 때문에 살갗이 간지러웠다. 그녀가 새틴 드레스를 입기 시작했다. 내가 미처 완성하지 못한 그녀의 무대의상이었다. 넝마처럼 볼품없는 드레스를 걸친 그녀가 미끄러지듯이 창가로 다가갔다.

 "디타. 디타."

 나는 흐느끼면서 그녀의 드레스 자락을 잡았다. 그녀가 뒤돌아보았다. 감청색 깃털이 그녀의 몸에서 너풀거렸다. 그녀가 창문을 닫고 내게로 다가왔다. 아침햇살에서 고소한 향기가 났다. -끝-



◇당선소감 - 임아라

"야무진 소설로 보답…기필코 성실할것"



비로소 간절합니다. 쓰고 싶어서 쓸 뿐, 그 이상 바라는 것 없다 했던 치기를 반성합니다.

 오랫동안 두려웠습니다. 제가 쓴 것이 소설인지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누군가 제 글을 읽는다는 상상만으로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이 순간에도 저는 당신에게 송구합니다.

 그러나 늘 그래왔듯이 태연한 척 하겠습니다. 곁에서 힘이 되어준 이들을 위해 의연하겠습니다.

 학부 시절, 유일한 A+를 성적표에 새겨주신 이승우 선생님, 고맙습니다. 기억하지 못 하시겠지만, 졸업 후에도 계속 쓰라 하셨던 그 한 마디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앞으로도 기꺼이 그러하겠습니다.

 허투루 보낸 과거를 후회하며 뒤늦게 결정한 석사 과정은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나날이었습니다. 한승원, 김수남, 나희덕, 박진숙 선생님께 안부가 아닌, 등단 소식을 전하게 되어서 벅찹니다. 과분한 칭찬과 지원을 잊지 않겠습니다.

 철없는 언니의 꿈을 위해 너무 많은 것을 희생한 내 동생 샛별아, 사랑해! 그간의 헌신이 헛되지 않도록 열심히 쓸게. 상금은 네 것이다.

 여린 제 소설에서 가능성을 발견해주신 이시백, 한창훈 심사위원과 대전일보사에 감사합니다. 야무진 소설로 보답하겠습니다.

 기필코 성실하겠습니다.

 

1982년 서울 출생

 조선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조선대 문창과대학원 석사 수료



◇단편소설 심사평 - 이시백(소설가)·한창훈(소설가)

군더더기 없는 문장·안정된 호흡 인상적



예심을 통과하여 본심에 오른 작품은 모두 10편이었다.

 당대현실의 자연스러운 반영일까?

 대부분 골방에 고립되어 있는 고독한 존재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데 문제는 아픔만 강조되고 있고 그것을 뛰어넘어 그 다음 영역으로까지 가는 것에는 성공하지 못하고 있었다.

 '생존'과 '고디바의 살해퍼포먼스'는 두 편 모두 촘촘하고 진지한 접근성이 눈에 들어왔으나 사소한 장면에 대한 과도한 의미부여, 지나치게 양이 많은 서술이 독서를 방해하고 말았다.

 '깊은 밤의 환'은 너무 느슨했고 '나에겐 죄가 없다'도 사설이 너무 심해 압축미가 없었다. 그러니까 말이 너무 많다는 느낌이 들면 실패라는 것이다. 꼭 필요한 에피소드를 정확하고 분명하게 보여주고 다음 단계로 재빨리 이동하는 것이 단편에서는 정말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최종심에는 3편이 올랐다.

 '다래끼'는 경제적인 문제에 내몰린 청년이 철거용역회사에 들어가서 겪는, 철거현장의 비인간성과 자신의 갈등을 비교적 잘 재현해 냈으나 인물설정과 진행이 상투성이라는 벽을 넘어서지 못하고 말았다.

 소아성폭행 피해자가 주인공인 '파잔'은 자신을 파멸시켜가는 과정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그 위악이 위악자체만으로 끝나버리고 마는 게 아쉬웠다. 독자를 보편·공유의 공간으로 끌어들이기에는 동력이 약했던 것이다.

 당선작인 '디타의 토요일'도 단점은 있었다. 택시기사와 트랜스젠더 애인, 아이를 낳아주는 나, 이 상관구도가 과연 호소력을 확보했는가, 의문이 들었고 '나'의 역할이 불분명한 것도 걸렸다. 그러나 무엇보다 군더더기 없는 문장과 안정된 호흡이 그 단점을 덮어주었다. 타 작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세련된 진행도 돋보였다. 다른 소재를 가지고 쓰면 어떤 작품이 나올까 기대도 된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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