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랑 그리워 남들 모르게 서성이다 왠지 모를 슬픔에 눈가에 이슬 맺히고, 흰 눈 내리는 날 들판을 서성이다 옛사랑 생각에 그 길을 찾아 나선다. 예사랑은 간곳이 없지만 그리움을 주체를 할 수가 없다. 스멀스멀 떠오르는 잊을 수 없는 옛사랑 추억을 그리운대로 생각나는대로 내버려 두자. 이문세가 부른 `옛사랑`의 가사를 대충 새롭게 구성해봤다.

학창시절 옛사랑 소녀를 떠올려 그린 그림이 있다. `옛사랑`의 주인공으로 착각이 들 정도로 이미지 구성까지 탄탄하다. 권옥연(1923-2011)의 `타월을 든 여인(1986)`이 딱 그렇다. 30년을 넘는 시간을 폭주하는 기관차를 타고 지나왔건만 옛사랑 그녀는 그때 그 모습 그대로이다. 그래서 가슴이 먹먹하고 아린 나머지 그리움만 크다. 간곳을 모를 것 같던 옛사랑이 그대로 있으니 말이다. 소녀는 금방 샤워를 하고 나온 청순미 가득한 성숙한 여인이다. 전라의 몸과 다름이 없지만 수준 낮게 여체의 아름다움을 과시하는 삼류 누드는 아니다. 파스텔 톤의 피부색과 얼굴의 윤곽선에서 지성미를 갖춘 청초한 서구 여인이 오버랩 된다.

여인은 잠시 상념에 젖어 있는 모습이다. 벌거벗고 있으나 수치심은 개입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긴장돼 있다. 냉철한 내면의 심리와 차가운 성정만이 화면을 지배하다보니 차가운 느낌이 들 정도다. 원인은 검은 톤의 배경과 차가운 청회색 때문이다. 스쳐가듯 우수와 엷은 슬픈 표정이 엿보이지만 순박해 보인다. 다소곳한 모습에서 서정적이고 성정이 강한 기풍이 엿보인다. 권옥연 누드에서만 풍기는 특유의 분위기다. 작가는 1970-80년대 산업화시기에 이국적 이미지의 그림을 많이 남겼다. 대중적 인기와 수요도 많아 당대의 이미지 코드로 성가를 누렸다. 아이러니하지만 30년이 지난 오늘의 현실까지 아우르는 작풍이다. 다문화로 시작된 문화 다양성 코드를 관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술은 길고 인생을 짧다고 하지 않았던가.

함경남도 출신인 작가는 당대의 그림천재이자 미술 아이돌이었다. 중학생 때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 예심에서 특선에 올랐으나 중학생이란 이유 때문에 입선으로 바뀔 정도였으니 말이다. 일본과 파리 유학을 거친 작가는 동양과 서양, 구상과 추상을 넘나드는 독창적인 작품 세계로 현대 한국 근현대 서양화단의 주류로 평가 받고 있다. 충남문화재단 문화사업팀장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원세연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