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망이 유수(有數)하니 만월대도 추초(秋草)로다/오백년 왕업이 목적(牧笛)에 부쳐시니/석양에 지나는 객이 눈물계워 하노라." 고려가 망하자 강원도 원주에 숨어 지낸 은사(隱士) 원천석(元天錫)이 읊은 시다. 고려가 망한 후 홀로 500년의 도읍지였던 개성에 들러 잡초로 뒤덮여 흔적도 없는 옛 궁성터를 보면서 옛 생각에 눈물 흘리는 장면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이들의 마음을 이해하고도 남을 심정으로 일제에 빼앗겨 잃어버린 조국강산을 개성에 빗대어 노래 부른 사람도 있다. "황성 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폐허에 스른 회포를 말하여 주노라/~성은 허무러저 빈터인데 방초만 풀으러/세상의 허무한 것을 말하여 주노라/~" 이 노래 하나로 이애리수라는 가수는 "민족의 연인"이 되었다고 한다.

방초로 우거져 빈터뿐인 황성옛터 만월대를 대상으로 남북 역사학자협의회에서는 지난 2007년 이후 9년간 7차례에 걸쳐 남북 공동 발굴조사를 하고 있었다. 그동안 3500여점의 유물을 발굴한 데 이어 올해 11월 30일에는 고려시대로 추정되는 금속활자를 출토하였다고 밝혔다. 1361년 홍건적에 의해 만월대가 완전 소실된 시점으로부터 계산해도 청주에서 찍은 활자 `直指`(직지1377년)보다는 17년이나 앞선 활자가 되는 셈이다. 이 같은 발굴은 여간한 쾌거가 아니다.

지난 12월 1일 국회의 한 회의실에서는 `DMZ(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과 남북역사문화 교류`라는 주제로 여야 정치인과 역사학자들이 모여 학술토론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는 궁예도성을 남북교류와 화합을 위한 제2의 만월대로 활용하자는 데에 의견이 모아졌다고 한다.

궁예도성이란 무엇인가? 신라가 기울어지는 형세가 보이자 궁예라는 야심가가 일어나 백성들의 반(反)신라감정을 발판으로 고구려를 부활시키겠다는 자못 거창한 구호를 앞세워 후고구려를 개성에 세웠다(901년). 그가 훗날 국호를 마진(摩震)과 태봉으로 바꾸면서 수도를 철원으로 옮기고(904년) 나서 지은 도성이다. 궁예는 집권 18년만에 왕건에 의해 왕좌에서 쫓겨났으나(918년) 도성은 물론 그 안에 있는 궁궐터는 아직도 철원지방에 현존하고 있다. 문제는 이 도성이 DMZ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어 군사분계선에 의해 양분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남북이 합의하지 않으면 발굴이 안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제2의 만월대처럼 발굴하자는 얘기인 것이다. DMZ안에는 이외에도 지금까지 확인된 유적만도 25종이나 된다고 한다. 남북역사학자 협의회가 앞장서서 DMZ내의 문화재 발굴사업을 연차적으로 해 나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에 벌써부터 가슴이 뛴다.

그동안 남북간의 학술 교류는 백두산 화산에 대한 공동연구를 위해서도 한 차례 한 적이 있었다. 2011년 3월 29일 남북 양측의 화산 전문가들이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에서 만난 이후 지금까지 소식이 없다. 아쉽기 한량없다. 이제라도 우리 측이 북한에 제의하여 언제 터질지 알 수 없는 백두산 화산문제에 대한 남북 전문가회의를 재개하도록 했으면 한다. 이와 더불어 차제에 필자는 남북역사학자들이 힘을 합쳐 중국의 `동북공정`에도 적절한 대응책을 모색해 나갔으면 싶다. 동북공정은 말할 것도 없이 동북 삼성지역의 역사와 지리와 민족문제에 대한 연구다. 이는 중국에 있는 조선족의 배타적 주체의식을 약화시키고 나아가서는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깡그리 중국역사에 편입시키려는 역사패권주의와 중화사상의 한 발로라고 필자는 이해하고 있다.

중국정부는 동북공정이 2002년부터 2007년까지 5년간에 걸친 과정을 거쳐 이제는 끝난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는 길림성이나 요녕성같은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의 사업을 이어 받아 보완 심화시키고 있다고 한다(김현숙). 그렇다면 중국의 속셈을 조기에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남북한의 역사학자들이 또다시 뭉쳐 만월대 조사에서처럼 중국에 널려있는 우리의 역사유적을 발굴하기를 기원해 마지않는다. 공동운명체로서의 남북한이 함께할 운명적 사업이 아닌가 해서다.

전환경부장관 UN환경계획 한국부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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