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은 시대의 거울이자 자화상이다. 정치·경제·사회상은 물론 그 시대 사람들의 생활 풍속까지 투영돼 있다. 그림을 감상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당시 상황을 이해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림감상 중 덤으로 얻는 묘미다.

이당 김은호(1892∼1979)의 `간성(看星·1927)`을 보면 부지불식간에 개화기 시대상이 읽혀진다.

조선미술전람회 출품작인 간성은 이당 회화의 본령인 채색 인물화다. 화제는 별자리를 본다는 의미로 골패를 이용해 재미삼아 하루 운세를 점친다는 얘기다.

돗자리가 깔린 방에서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인이 골패 놀이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한켠에는 화투와 함께 재떨이에는 금방 피우다 만 것으로 보이는 궐련이 놓여있다. 활짝 열린 문밖에는 댓잎이 하늘거리고, 담을 타고 오른 나팔꽃 덩쿨이 제 몸에 겨운 듯 늘어뜨린 가는 줄기가 그네를 타듯 너울거린다. 정과 동이 무시로 교차하는 여름 어느 날 한가로운 풍경이다. 조롱(새장) 속에는 흰 앵무새가 여인을 골똘히 내려다보고 있다.

앵무새를 비롯해 골패·화투·담배 등 방안 곳곳에는 죄다 여염집 여인과는 어울리지 않는 물건들이다. 화류계 여인의 방이다. 그림 속 여인은 기녀가 분명하다. 술 손님이 없는 무료한 낮 시간을 골패 놀이로 소일하고 있는 것이다.

방안의 분위기만으로도 개화기 경성의 풍속도가 읽혀진다. 소매와 배래선, 진동(소매 겨드랑이 밑넓이)이 넉넉하다. 당시로선 유행의 첨단인 헐렁한 한복 패션이다. 일본에서 유입된 왜색 패션의 영향이든 그렇지 않든 말이다. 적어도 그때는 그랬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혹자는 민족주의적 시각에서 바라보기도 한다. 조롱에 갇힌 새와 기방을 울타리삼은 여인, 그리고 금수강산이 감옥과 다름없는 나라 잃은 민초를 은유하고 있다고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당이 친일 미술인으로 낙인이 찍혀있는데 어불성설이다. 비록 친일행동 이전 시기의 작품이라도 선한 평가를 받기는 어렵다. 옥에 티가 괜한 말이 아니다.

비록 예술동네 얘기뿐만 아니라 탐욕에 눈이 먼 정치판과 시정잡배의 놀이터인 저잣거리에도 진리는 불변이다. 이당은 고종과 순종의 어진 제작에 참여한 한말 마지막 어진화사로 미술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하지만 친일행적이 드러나면서 평가가 크게 엇갈리는 화가다. 충남문화재단 문화사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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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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