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레미`는 시골에서 곡물에서 필요한 낟알만 남기고 먼지와 껍질을 걸러내기 위해 사용하는 체의 순우리말이다. 자동차에서는 배출가스의 유해성분을 걸러내는 정화장치가 대표적인 어레미 기술이다. 디젤차는 가솔린차보다 엔진 출력과 연비가 좋지만 각종 호흡기 질환을 유발하는 질소산화물과 같은 유해물질을 다량으로 배출한다. 이에 전 세계적으로 배출가스 규제가 계속 강화되었고, 국내에서도 올해부터 유럽연합(EU)의 배출기준인 유로 6가 적용되어 디젤차의 질소산화물 배출허용치가 훨씬 엄격해졌다. 이에 발맞춰 글로벌 자동차업체는 디젤차의 질소산화물을 인체에 무해한 물질로 변화시키는 촉매장치, 그리고 배출가스를 재순환시켜 질소산화물 생성을 줄이는 장치의 연구개발 등을 통해 디젤차가 친환경 자동차라는 `클린디젤`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9월 미국에서 폴크스바겐이 인증시험 모드에서만 배출가스 정화장치를 작동시키도록 소프트웨어를 조작한 눈속임 사건이 알려졌다. 최근에는 국내에서 판매된 폴크스바겐의 일부 차종도 배출가스 정화장치를 조작한 사실이 확인되어 지금까지 쌓아온 클린디젤의 명성이 한순간에 추락하고 있다.

그렇다면 올해 상반기 처음으로 일본의 도요타를 제치고 글로벌 1위 자동차업체로 성장한 폴크스바겐이 어쩌다 이렇게 추락한 것일까? 표면적으로는 경영진과 임직원들의 부족한 윤리의식과 단기간의 성과주의 그리고 위계적이고 강압적인 조직문화를 원인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강화된 배출가스 기준과 연비를 동시에 만족하는 친환경 고연비 디젤차를 만들기 위한 현재 기술력의 한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사건과 관련된 디젤차는 정화장치 작동 시 연료소비 증가 등으로 연비가 떨어지는 배출가스 저감장치를 사용하였다. 배출가스 저감효율을 높이려면 연비가 떨어지거나 차량 가격이 올라가는 기술적 한계가 있는 것이다. 현재 주요 자동차업체들도 폴크스바겐의 방식을 채용하고 있어 비단 폴크스바겐 한 회사에 국한되는 문제로 볼 수 없다. 따라서 자동차업체는 배출가스 저감과 연비 개선이라는 기술적 난제의 해결과 눈속임이 불가능한 가혹한 검사의 어레미 망을 통과해야 하는 난관에 부딪혀 있다.

그러나, 디젤차의 단점을 극복하고자 하는 많은 연구개발이 진행 중이고 기술적 성과도 점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질소산화물 규제가 본격 도입된 2000년(유로 3) 이후 배출가스 정화기술의 국내 특허 출원건수는 32건에서 2013년 227건으로 급증하였다. 또한 유로 6 기준을 만족하는 최근 디젤차의 실제도로 주행 시 질소산화물 배출량은 유로 5 기준 차량보다 상당히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배출가스 조작 파문이 폴크스바겐뿐 아니라, 국내외 기업들에게 `클린` 기술혁신을 중시하는 정도경영(正道經營) 만이 디젤차에 대한 신뢰회복과 지속가능한 성장의 해법이라는 교훈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이와 함께 친환경 고효율 디젤차 개발을 위한 정부와 자동차업체의 노력은 계속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상철 특허청 특허심사 2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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