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사람들은 노년의 취미 중 서화 감상을 으뜸으로 꼽았다. 누워서 그림을 걸어 놓고 명승을 여행한다는 와유(臥遊)란 말도 그런 연유에서 비롯됐다. 어떤 선비는 마음 맞는 사람과 더불어 법서와 명화를 품평하는 것을 인생의 제1락(樂)으로 여겼다고 한다. 여기에 차와 술을 나눌 친구와 함께라면 더할 나위가 없었을 것이다.

조선후기 화원 이한철(1808∼)의 `향산구로회도(香山九老會圖·1887)`는 옛 선비들의 선망의 대상인 서화 감상 장면을 그린 풍속화다. 화제는 아홉 노인이 향산에서 그림감상을 한다는 뜻이다. 그림은 당나라 시인 백거이가 낙향해 여덟 친구와 구로회를 결성하고 안빈낙도하는 삶이 주제다. 모두 덕망이 높고 팔순을 넘은 동향 사람으로 술과 시로 풍류를 즐기고 그림을 감상하면서 친목을 도모했다고 한다. 동자를 제외한 아홉 노인 중 하나가 백거이고 나머지는 그의 친구들일 것이다.

향산을 배경삼아 길 한가운데서 두 노인이 족자를 마주 잡고 서 있고 나머지는 빙 둘러 서서 그림얘기로 왁자지껄한 분위기다. 감상 열기가 한껏 고조돼 시간가는 줄도 모른다. 한 노인이 그림을 본 후 느낀 바를 한마디 하면 일부는 동의를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다르게 말을 하는 모양새다. 오른쪽 두 노인은 동의를 못하겠다는 듯이 한손을 흔들며 큰 소리로 얘기를 하는 폼이 그렇다.

아홉 친구가 오랜만에 만났는데 그림 얘기뿐이겠는가. 그림얘기로 만남을 끝낸다면 헤어진 후 아쉬움이 크기 때문이다. 정치, 건강, 자식 얘기도 안줏감처럼 곁들여 지고 그림이 탐나고 경제적 여유까지 있으면 흥정도 오갔을 것이다. 그런데 보고 있는 그림은 엉뚱하다. 화폭에 있어야할 산수나 매화, 난초가 없다. 태극 모양의 원이 전부다. 화가의 장난기어린 치기가 발동한 모양이다. 알아서 생각하고 느끼라는 숙제이자 보는 사람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한 복선일 것이다. 그리고 그림 밖의 감상자에게까지 친절을 베풀 수 없다는 화가의 고집일 수도 있다.

김홍도의 `그림감상`과 닮은꼴이다. 이한철이 영향을 받은 탓이다. 화가는 부친에 이어 2대에 걸친 화원이다. 초상화 제작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헌종, 철종, 고종의 어진 제작에 참여했으며 이하응의 초상화 다섯 점은 이한철 초상화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대표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충남문화재단 문화사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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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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