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story 신(新) 고졸시대… 스무살, 공무원 꿈 이루다 대전여상 3학년 권지선·한효정·변다연 학생

고교 졸업과 함께 공무원에 합격한 대전여상 권지선, 한효정, 변다연 학생(왼쪽부터)과 윤정환 교장(맨 왼쪽), 신극재 취업지원 부장.
고교 졸업과 함께 공무원에 합격한 대전여상 권지선, 한효정, 변다연 학생(왼쪽부터)과 윤정환 교장(맨 왼쪽), 신극재 취업지원 부장.
대학 졸업장보다 능력으로 인정받는 `신(新) 고졸시대`가 시작되고 있다.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는 `3포 세대`를 넘어 포기할 게 너무 많은 `N포세대`, 청년실업문제와 경제적 불평등을 빗댄 `헬(Hell)조선`이라는 인터넷 신조어가 난무하는 대한민국 현실에서 고졸자들이 공무원과 공기업, 대기업의 바늘 구멍을 뚫고 있다.

최근에는 옛 상업고와 공업고 등 특성화고 학생만을 대상으로 하는 `지역인재 국가공무원` 채용 시험도 문호를 확대하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 2014년 정부세종청사에서 국가정책조정회의를 열고, 관계 부처 합동으로 공무원의 일반·기술 직렬 내의 고졸자에 적합한 직무와 자격을 추가로 발굴하는 것과 9급 공무원 시험에서 특정 직렬에 국한된 채용 분야를 일반 및 기술까지 확대하는 `고졸취업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국가직 지역인재 9급 견습직원의 채용 규모는 지난 2012년 104명에서 올해 150명으로 대거 늘었다.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 중인 선취업 후진학 제도도 `신 고졸시대`의 강력한 동력이다. 취업한 뒤 3년이 지나면 재직자 특별전형을 통해 수능을 치지 않고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 2016학년도는 `인(in) 서울`을 포함해 전국 88개 대학에서 5932명을 재직자 특별전형으로 모집한다. 때문에 서울 수도권에서는 어지간한 인문계 고교에 진학하는 것보다 일찌감치 특성화 고교를 선택해 돈도 벌고, 대학에 진학하려는 바람이 거세지고 있다.

대전·세종·충청지역에서도 이런 움직임이 감지된다. 고학력 실업난이 심각한 가운데 일찌감치 특성화고에 입학해 공직(公職)의 등용문을 힘차게 연 학생들이 있다.

주인공은 대전여자상업고등학교 3학년 권지선, 한효정, 변다연 학생이다. 세 학생은 올해 나란히 국가직 지역인재 9급 견습직원 시험을 통과했다. 대학을 졸업해도 뚫기 힘든 공무원 시험을 고교 졸업과 동시에 합격한 셈이어서 주위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세 학생이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비결은 일반고가 아닌 특성화고에 진학한 덕택이다. 이들 학생은 일찌감치 특성화고에 대한 인식이 남달랐다. 중학교 성적이 260점(내신 포함 300점 만점) 안팎인데도 인문계 대신 상업고교를 선택한 이유는 단 한가지 이유였다. 바로 공무원이 되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다.

관세직에 선발된 권지선 학생은 "중학교(남선중)를 다닐 때만 해도 대학 진학이 목표였어요. 하지만 3학년 때 대전여상 입학설명회에서 공기업에 취직한 졸업생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바뀌었어요. 제 꿈이 공무원인데 맞춤형으로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여상 진학을 결심했습니다. 공무원이 됐다는 것은 3년 전 중학교 성적으로는 꿈도 꿀 수 없는 인생역전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세무직에 뽑힌 변다연 학생은 특성화고의 최고의 매력 포인트로 `선취업 후진학`을 꼽았다. "문화여중에서 전교 30등 정도 수준이었고, 당연히 대학을 목표로 공부했어요. 저도 학교에서 실시한 특성화고 설명회에서 여상 출신 대학생 언니의 발표를 듣고, 특성화고 진학으로 진로를 수정했어요. 무엇보다 선취업 후진학 제도는 부모님을 설득하는 데도 효과적인 아이템이었습니다. 재직자 특별전형을 통해 직장생활을 3년 정도 한 뒤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는 얘기에 부모님도 흔쾌히 특성화고교 진학을 허락하셨어요."

대학 진학의 목표를 잠시 접고, 대전여상에 진학한 학생들에게 특성화된 맞춤형 진로 프로그램과 다양한 동아리 활동은 신세계였다. 고교 3년 동안 세 학생은 10여 개의 회계, 세무, 관세 관련 자격증을 따냈다.

행정 회계직인 한효정 학생은 전산회계1급, 전산세무회계, 기업회계 3급, 생산물류회계, 펀드투자상담사 등 무려 18개의 자격증을 보유했다. 대부분 회계 분야에 필요한 사무 및 회계 실무 자격증이다.

한효정 학생은 "대학 진학 대신 특성화고를 선택한 만큼 자격증을 많이 취득한 것이 취업의 꿈을 이루어 가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학교에서 제공하는 방과후 수업이나 동아리를 적극 활용하면서 자격증을 하나 씩 갖춰나갈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권지선 학생도 학교 무역영어동아리를 통해 무역영어자격증 3급과 토익 800점 대의 실력을 갖추면서 관세 공무원의 꿈을 키워갔고, 변다연 학생은 학교에서 실시하는 `지역공동정보영재`로 발탁되면서 VBA, C언어, 알고리즘, PHP 등의 컴퓨터 활용능력을 심화시키면서 세무 공무원의 자격을 갖춰 나갔다.

세 학생은 특성화고교 진학을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예전에는 특성화고교라고 하면 가정 형편이 어렵거나 성적이 모자란 학생들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학교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최근에는 성적이 우수한 친구들도 자발적으로 선택하고 있어요. 특성화고에 대한 편견을 가졌다면 우리처럼 목표를 세우고, 꿈을 이뤄낸 학생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후배들도 특성화고에서 자신의 미래 진로에 대해 생각하고, 현실적인 꿈을 찾을 수 있길 바래요. 선취업 후진학은 순서만 바뀔 뿐 차이가 없어요. 대학 진학도 좋은 방법이지만 확고한 진로를 선택했다면 특성화고에서도 얼마든지 맞춤형 준비를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공무원으로서의 포부도 밝혔다. "안정적인 직업을 갖게 됐다는 기쁨보다는 봉사하고 헌신하는 공직자가 되고 싶어요. 말만 앞서지 않고, 행동으로 노력하며 항상 나라와 국민을 생각하는 일꾼이 되겠습니다." 권성하 기자

◇특성화고교란?

산업현장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는 학교로 교육을 통해 우수한 기술기능 인재를 키우고 좋은 일자리를 지원한다. 취업중심 직업교육과 맞춤형 인재육성, 취업 후 학위취득을 위한 `선취업 후진학`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특성화고는 모든 학생이 3년 동안 입학금과 학비, 입학금, 수업료가 장학금으로 지원된다. 적성에 맞는 학과를 선택해 미래의 직업 생활에 필요한 교육을 이수하고, 국가기술자격증 등 다양한 자격을 취득해 취업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교육부가 지난 9월 22일 발표한 `2015년 특성화고·마이스터고 취업률`(한국교육개발원·KEDI 조사)에 따르면 특성화고의 취업률은 47.6%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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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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