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 미팅에서 자주 나오던 심리테스트 중 하나엔 본인이 좋아하는 집을 고르는 질문이 있었다. 깎아지르는 절벽위의 크고 멋진 고성(古城), 낙엽속의 산장, 눈 속에 파묻힌 작은 오두막이라는 예문 중에, 나는 눈 속의 작은 오두막을 선택했고, 그 답은 소박하지만 따뜻하고 행복한 삶을 꿈꾸는 타입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 느낌이 좋았고, 그 이후로도 눈이 내리면 어김없이 상상속의 나만의 작은 오두막을 상상하며 마음속의 평온함과 여유를 찾곤 했다.

법정스님의 `오두막 편지`의 첫머리에 `흙방을 만들며`라는 글이 있다. 규격화된 주거공간으로 인해 삶의 내용도 개성을 잃고 획일화 돼 가고 있는 현재 우리들의 삶에 대해 안타까워하며, 당신이 그동안의 경험과 지혜로 오로지 돌과 찰흙으로만 이루어진 방을 만드시면서, 질박하고 수수함의 기쁨과 잔잔한 삶의 여백을 음미하는 실천으로 참 삶의 의미를 일깨워 준다. 하지만 우리 도시인의 삶은 스님의 그것과 다르기에 글에 따라 실천하기엔 거의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치열한 현실 속에서 전원이나 산속에 세컨드하우스를 마련하고 도시의 삶과 전원의 삶을 공유하는 것은 사치일수 있다.

이럴 때 마음속의 질박하고 수수한 오두막 하나정도는 만들고 살면 어떨까 싶다. 너무 깊지 않은 산중에 적당히 평평한 땅을 고르고, 주변에 있음직한 흙과 돌과 나무로 한 평 반을 넘지 않은 방을 만들어, 방석 한 장과 등잔 하나를 둔 마음속 공간을 만들어 보자. 첫눈 오면 그 방석에 틀어 앉아 문지방 넘어 들어오는 풍경 넉넉히 담아두고, 바람소리 빗소리 들리면 등잔불 켜고 시집(詩集)한권 넉넉히 담아보자. 소욕지족(少欲知足). 당신 마음속의 공간이 넉넉할수록 도시의 작은 것으로도 만족할 것이고, 화려한 도시를 덮는 첫눈의 순수함도, 도시의 각박함 속에서의 삶의 잔잔한 여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첫눈이 내리는 도시의 풍경은 온통 새하얗다. 요란한 세상은 새하얀 눈꽃 옷을 입어 소박하고 순수한 몸짓으로 새롭게 다가온다. 첫눈이라는 설렘과 순수함은 각박한 도시를 사는 우리들에게 가슴 뛰는 감동과 희망을 준다. 우리의 집과 거리와 도시의 풍경을 이렇게 단 한 번의 현상으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있겠는가? 이 순간만큼은 미끄러운 퇴근길 걱정도, 눈 치울 걱정도, 번거로운 겨울채비 걱정도 잊고, 첫눈이 만든 깨끗하고 아늑한 도시의 풍경을 마음속 공간에 넉넉히 담아보자. 이상우 건축사사무소에녹 건축사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