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22일 세상을 떠나며, 수많은 정치인들이 그의 빈소를 찾아 소위 조문정치가 한창 진행 중이다. 대부분의 조문 정치인들은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찬사와 높은 평가를 아끼지 않고 있으며, 일부 정치인들은 자신이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아들임을 경쟁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고인에 대해서 좋은 평가를 하면서 추모하는 것은 우리의 좋은 관습이지만, 혹시 이들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자신의 정치적 입지 강화를 위해 마음에도 없는 말과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 하는 사람도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다양한 평가가 가능하며, 평가자의 입장과 관점에 따라 다른 평가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모든 정치인이 긍정적인 평가만 하고, 대부분의 언론도 그러한 방향으로 보도를 하고 있는 모습이 조금은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물론 평범한 개인이라면 그의 사후에 나쁜 얘기는 덮어두고 좋은 얘기만 하는 것이 마땅하겠지만, 한 나라의 야당 지도자와 대통령을 지낸 공인에 대해서는 보다 객관적이고 다양한 평가가 필요하다. 그것이 향후 국가와 정치 발전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를 할 생각은 없다. 단지 그와 그의 시대가 한국 정치에 남긴 두 가지 중요한 유산을 오늘의 시점에서 검토해 보고자 한다. 첫 번째 유산은 민주화이다. 김 전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뛰어난 정치인이었으며, 야당 지도자로서 한국 민주화에 커다란 공을 세운 점에 대해서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박정희, 전두환 두 권위주의 정부 하에서 민주화 투쟁을 주도하고 결국 1987년 6월항쟁을 통해 6·29선언을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그가 보였던 용기와 카리스마, 그리고 정치적 리더십은 한국의 정치사에 길이 남게 될 것이다.

두 번째 유산은 3당 합당을 통한 영호남 지역주의 대결의 공고화이다. 1990년 1월 22일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3당합당은 당시 국회 과반수 의석 확보에 실패했던 집권여당 민주정의당, 야당이었던 통일민주당과 신민주공화당이 합당해 민주자유당이라는 거대여당을 출범시킨 사건을 말하는데, 이 과정에서 당시 통일민주당을 이끌던 김 전 대통령이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던 것이다. 3당합당에 대해서는 다양한 평가가 가능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이것이 영호남 지역주의 대결을 공고화했다는 사실이다. 당시 3당합당 주도 세력들은 합당의 명분 중 하나로 4당 체제에서의 지역주의(대구경북, 부산경남, 호남, 충청) 극복을 내세웠지만, 실제로 3당합당은 영남 대 호남 혹은 비호남 대 호남이라는 지역 대결 구도를 고착화하는 데 기여했다.

양김(혹은 3김) 시대는 2000년대 들어 들면서 이미 실질적으로 끝났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과 그 시대가 남긴 정치적 유산인 민주화와 지역주의는 여전히 오늘의 한국 정치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동시에 한국 정치의 과제로 남아 있다.

먼저 민주화는 하나의 과정이며, 한국 민주주의는 지속적으로 심화 내지 공고화돼야 하는 과정에 있다. 최근 일부 국민들 사이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피로감이 쌓이고 있고, 그에 따라 한국의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는 우려들이 나오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후계자를 자처하는 이들은 그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보다는 그가 보여주었던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할 것이다.

또 다른 유산인 지역주의는 점차 완화되어 가고 있는 추세이다. 충청 지역이 3당합당에서 빠지고 균형추 역할을 하고 있고, 유권자의 세대교체로 인해 젊은 유권자 사이에서 지역주의 감정 또한 약해지고 있다. 다만 현재의 소선거구 단순다수제로 인해 지역주의 정당 구도가 과장되어 나타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남은 과제는 비례제를 강화하여 특정 정당이 특정 지역에서 싹쓸이하는 현상을 방지하는 일이다.

김 전 대통령을 개인적으로 좋아했던 한 사람으로서 지금의 추모 분위기가 계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한 개인에 대해 정서적으로 추모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와 그 시대가 남긴 정치적 유산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이를 한국 정치 발전의 계기로 만들고자 하는 냉철함도 필요할 것이다.

김욱 배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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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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