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리니스트 선형훈 대전아트오케스트라와 협연 >>>내달 5일 대전예술의전당

30년의 긴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바이올린 천재. 시작은 다소 미흡했다. 소리는 정교하지 못했고, 표정은 경직됐다. 오랫동안 무대를 떠나면 악기가 먼저 알아보는 법. 바이올리니스트 선형훈이 그랬다. 지난 5월 오랜 공백을 딛고 첫 단독콘서트를 개최했던 그는 틀에 갇히지 않은 유연성과 자유로운 곡 해석으로 `성공적인 복귀`였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기대에는 못 미쳤다. 급하게 준비한 탓이다.

그런 그가 이번엔 칼을 제대로 갈고 무대에 선다. 음악적 천재성에 시간적인 노력, 결혼 3년만에 아빠라는 호칭까지 얻는 기쁨이 더해졌으니, 이젠 관객들의 귀가 호강할 차례다.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부활의 날갯짓을 시작한 선형훈은 내달 5일 오후 7시 대전예술의전당 아트홀에서 대전아트오케스트라와 협연 무대를 가진다.

-지난 5월 리사이틀 공연 이후 몇 개월만이죠?

"찾아가는 음악회, 지역주민을 위한 행사 등 작은 행사는 더러 있었지만, 큰 무대는 7개월 만이네요."

-첫 공연 후 만감이 교차하지 않던가요?

"5월 연주는 오랜기간 준비한 공연이 아니었어요. 프로그램도 한달전에 바뀌어서 준비기간이 충분하지 않았죠. 제 스스로 듣기에도 부족한 점이 많았던 공연이었습니다. 그때 공연 이후 연주회는 오래 준비하자는 마음을 먹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12월 공연에만 포커스를 맞췄어요. 이를테면 양보다 질을 높이자는 거죠."

-민간오케스트라인 대전아트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이네요.

"네, 윤성규 지휘자님과는 한두번 만난적이 있었는데, 지난 5월 연주를 보시곤 바로 제안을 하셨어요. 1년에 한번 정기연주회가 있는데, 저와 협연을 하고 싶으시다면서요. 그날 바로 잡았죠. "

선형훈은 이날 윤성규가 이끄는 대전아트오케스트라의 연주하에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마단조 작품번호 64`를 연주한다. 애절한 선율과 역동적인 리듬이 두드러지는 이곡은 베토벤과 브람스의 곡과 함께 세계 3대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꼽힌다. 특히 서정적이고 로맨틱한 분위기에 바이올린의 강렬한 독주가 돋보이는 곡이다.

-멘델스존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윤 지휘자님이 독일 작곡가 곡을 하고 싶다 하셨어요. 베토벤, 브람스, 멘델스존 중에 고민하다, 다른 협주곡보다 친근한 멘델스존을 선택했어요. 13살때 미국 줄리어드 음대 예비학교 에서 이 곡으로 오디션을 봤고, 다시 전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이 곡은 베토벤, 브람스곡과는 달리 3악장 전체가 행복함이 물씬 풍기는 곡입니다. 현재 심경을 대변하고 있다고 봐도 될런지요.

"최근에 첫 아이(딸)가 태어났습니다. 결혼 3년만에요. 아이가 저를 행복하게 해주는건 맞는 것 같습니다. 멘델스존은 말씀하신 것처럼 곡 전체가 기쁘고, 경쾌한 선율로 꾸며져 있습니다. 브람스, 베토벤 보다 상당히 기분 좋은 곡이지요. 결혼행진곡도 멘델스존 곡이잖아요. 작곡가 성향이 그런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어떤 곡을 좋아하세요?

"저는 브람스나 파가니니 콘체르트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지금 그런 곡을 연주하려면 연습량이 엄청나야 해요. 지금은 멘델스존이나 브루흐 등 제 나이에 맞는 편안한 곡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지난 9월 정경화 선생님이 브루흐 협주곡을 성공적으로 연주하셨단 소리를 들었는데, 저도 브루흐를 멋지게 소화해 보고 싶어요."

-정경화, 이차크 펄만 등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를 키워낸 이반 갈라미언 교수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네요. 마지막 제자셨는데요.

"바이올린을 위해 태어나신 분이셨죠. 아직도 기억이 생생해요. 일요일도, 휴가도 없었죠. 연습, 또 연습. 자식도 없으셨어요. 제자가 곧 자식일 정도로 바이올린에만 헌신하셨던 분입니다. 정 선생님은 10년 이상을 함께 하셨지만, 저는 안타깝게도 3년 밖에 배우질 못해 나중에 애를 좀 먹었어요."

-네덜란드 유학길에 만난 빅토르 리버만 교수와는 어땠나요.

"갈라미언 교수가 티칭의 대가였다면, 리버만 교수는 이론과 실기를 모두 갖춘 연주자셨어요. 한마디로 소리 내는법을 아시는 분이셨죠. 연습하다가 막히면 직접 시연을 해주시니 음악의 깊이와 연주 기법이 리버만 교수를 통해 많이 보완됐습니다. 그렇게 2-3년을 함께 보내다보니 스승과 제자 이상의 인간적인 유대 관계가 쌓였지요. 제가 공부하던 곡을 레코딩해서 토론도 하고 음악적 고충도 나누는 그런 사이요. 제 음악 인생에서 많은 영향을 차지하는 분이십니다."

-두 스승의 죽음 이후 방황의 시간도 있었겠네요.

"제 목표는 최고가 되는 것이었어요. 정경화 선생님처럼, 이차크 펄만처럼요. 저도 그렇게 연주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음악의 길을 너무 험하고, 장벽도 많았습니다. 음악을 하면 할수록 이 길이 아닌가 싶었어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이것저것 공부도 해봤지만, 제가 몰두할 일은 음악. 그것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무엇보다 결혼을 늦게 했는데, 아내의 격려와 용기로 다시 음악의 길로 오게 됐습니다. 음악을 통해 다시 도전할 수 있는 힘을 얻은 셈이죠."

-내년에 큰 공연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내년 6월 7일, 서울에서 줄리아드 시절 친하게 지냈던 후배 장중진 비올니스트(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수석)와 김대진 피아니스트(수원시립교향악단 지휘자), 배일환 첼리스트(이화여대 교수)와 함께 챔버 뮤직 컴백을 축하하는 무대를 함께 합니다. 음악을 활기차게 하는 한해가 되지 않을까 쉽습니다."

-후학 양성의 꿈도 갖고 있나요.

"물론입니다. 지금은 때가 아니지만, 제 연주가 어느정도 궤도에 오르면 티칭도 하고 싶어요. 음악적 거장들에게 티칭을 받으면서 느꼈던 변화와 스킬을 후배들에게도 전달하고 싶네요."

-콩쿠르 우승에 목표를 둔 지도법은 아닐듯 한데요.

"네 저 역시 콩쿠르 운이 따르지 않은 편입니다. 콩쿠르는 장단점이 분명합니다. 우승 했다고 평생 성공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지요. 스포츠는 1등이 있지만, 음악은 스포츠가 아닙니다. 진정한 1등이란 없는 것입니다. 모차르트, 베토벤에게 1등이 어디있습니까. 자신만의 1등을 추구하는게 중요합니다."

인터뷰도 유독 호흡이 잘 맞는 사람이 있다. 묻기도 전에 알아서 다음 질문에 대한 답을 척척 해줄 때가 바로 그렇다. 1시간여의 인터뷰동안 선형훈이 마치 질문지를 본 사람처럼 알아서 답변을 척척 해준것처럼, 12월 공연에 대한 기대감이 덩달아 커졌다. 청중들이 듣고 싶은 음악을, 한 템포 먼저 들려줄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으며,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고 했다. 무대위에서 음악을 진정으로 즐기는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원세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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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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