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드라마 `송곳`이 인기다. 이 드라마에는 그 흔한 멜로나 액션, 하다못해 영웅 한 명조차 없다. `노동조합`이라는 소재도 부담스럽고, 주제 역시 무겁다. 그런데도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송곳이란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낭중지추(囊中之錐)`를 떠올렸다.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능력과 재주가 있는 사람은 스스로 두각을 나타낸다는 의미의 고사성어 말이다. 그러나 회를 거듭할수록 제목 송곳은 고사성어에서의 그것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단어 `송곳`은 주로 `뚫다`와 함께 많이 쓰인다. 가느다란 쇳조각으로 두터움을 뚫을 때, 약한 힘으로 매우 어려운 난관을 극복할 때 `송곳`이란 단어가 사용된다. 이 때문에 뚫는 과정에서의 아픔, 고통, 불안 등이 수반되는 것은 필수적이다. 뚫은 후 송곳은 성공이라는 미명으로 포장되고, 종종 경외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만약 동사 `뚫다`의 주체가 다른 사람이 아닌 `나`라면 어떻게 될까. 드라마 대사 중 "비겁하고 무력해 보이는 껍데기를 잡고, 흔들고, 압박하면 분명 하나쯤은 뚫고 나온다. 다음 한 발이 절벽일지도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도 제 스스로 자신을 어쩌지 못해서 껍데기 밖으로 기어이 한 걸음 내딛고 마는 그런 송곳 같은 인간이" 바로 `나`라면 어떨까. 드라마 `송곳`은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얼마 전 세종시에서 `제3회 대한민국 지방자치박람회`가 열렸다. 늘 그렇듯 박람회는 많은 것을 돌아보게 한다.

민선 지방자치 20년. 지난 스무 해 동안 지방자치는 더딘 걸음이지만 변화를 꿈꾸며 한발 한발 걸음을 내딛었다. 그러나 이러한 진화를 향한 발걸음은 사실 지방 스스로가 생존키 위한 투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47년 제헌국회가 지방자치법을 제정하면서 비롯된 지방자치는 중앙권력의 칼 날 아래 시행여부조차 오락가락했으며, 권력분산을 우려하는 중앙정치권 때문에 지방의회만 있고 자치단체는 구성되지 못하는 반쪽 짜리 형태인 때도 있었다.

실제적인 지방자치는 1995년 6월 제4대 지방선거 이후에야 비로소 실시됐다. 하지만 이후 20년 동안 지방은 `예산`과 `인사`를 움켜 준 중앙의 예속에서 제대로 벗어나지 못한 채 여전히 반쪽 짜리 지방자치에 머물고 있다.

사실 `중앙 vs 지방`이라는 구도 속에는 늘 지방의 희생과 위대함이 내재돼 있다. 조선시대 그 수많은 왜란과 호란의 위기 시 국가존립과 백성안위의 뒤에는 전국의 의병봉기가 있었으며, 일제의 경제 예속화 음모에는 대구에서 비롯된 국채보상운동이 존재했다. 3·1만세운동과 일제의 경제수탈정책에 항거에 평양에서 시작된 물산장려운동 역시 그러했다.

현대사를 아우르는 민주화운동도 부산, 광주, 대전 등 지방이 대부분이었으며, IMF 당시 금모으기 운동 또한 지방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2015년 현재 우리의 지방자치는 드라마 송곳의 인물들처럼 여전히 불안하고, 지방은 발전은커녕 과거 누란의 위기에서 조국을 구한 자부심마저 잃고 있는 모습이다. 세계가 일찌감치 지방화를 기치로 내세우며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도, 우리의 지방자치는 좀처럼 중앙집권을 뚫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다음 한 발이 절벽일지도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도 제 스스로 자신을 어쩌지 못해서 껍데기 밖으로 기어이 한 걸음 내딛고 마는 그런 송곳 같은 지방`이 필요하다. 이제 지방자치는 국가경쟁력의 필요충분조건이자 변화의 상수가 됐기 때문이다.

중앙 역시 지방을 더 이상 예속화 대상이 아닌 동반자로 삼아야 한다. `중앙 vs 지방`의 대립은 국가 발전의 저해는 물론 국론 분열의 시작이자 끝이기 때문이다.

드라마 송곳의 명대사 패러디 하나. "지방에 대한 존중은 두려움에서 나온다. 살아있는 지방은 빼앗기면 화를 내고 맞으면 맞서서 싸운다."

박성효 전 대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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