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희 동화작가.
김미희 동화작가.
`신이 던진/ 낚시 바늘에/ 걸린/ 물고기 한 마리// 네팔 사람들이/ 놓아주지 않아 / 하늘로 /올라가지 못했다` -졸시 `마차푸차레(Machapuchare)` 전문-

2010년 봄이 시작될 무렵, 나는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를 보며 서 있었다. 신들이 노니는 곳이라 일컬어지는 곳, 아침이면 비스듬히 비치는 햇살에 말갛게 세수하는 안나푸르나. 오른쪽에 뾰족 날카롭게 솟은 봉우리 마차푸차레. 인간세상 말로는 도저히 설명하기 어려워 아, 아, 감탄사만 연신 뱉어내게 되는 곳. 설산의 절경이 눈앞에 놓였을 때 정말 신들의 언어가 필요했다. 일개 인간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마음을 열어 두는 것밖에 없었다. 한껏 담을 수 있도록 가슴을 활짝 펴는 수 밖에. 아, 아 네팔! 그렇다. 아, 아, 네팔이다.

히말라야가 네팔 사람들의 눈망울을 사랑한 것이다. 다른 곳으로는 갈 수 없었던 것이다. 네팔은 신의 나라이다. 그래서 한껏 겸손한 사람들이 산다. 자신을 낮추는 이 사람들은 기도로 아침을 맞이하고 기도로 밤을 맞는다. 여명 빛에 드러난 산을 향해 아침이면 두 손 모아 기도를 올린다. 설산 앞에선 네팔리(네팔사람이란 뜻)가 아니어도 겸손해진다. 겸손, 아름다운 전염이다.

간드룩 해발 2080m의 산장촌. 담푸스의 조그만 학교에서 여러 나라 작가들이 모인 컨퍼런스가 있었다. 그곳에서 3박 4일 동안 그들의 문학과 우리의 문학을 얘기했다.

하루는 네팔 아이들은 그림을 그리고 시인들은 그림을 보며 떠오른 걸 시로 쓰는 행사가 있었다. 전등이 없어 창문을 모두 열어 설산의 빛도 보태야 하는 교실에 아이들과 시인들이 짝을 이뤄 마주 앉았다. 아마 학교에서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들로 선발되어 온 것 같았다. 스물대여섯 명 남짓한 아이들이 그림을 그렸다. 아이들 대부분은 눈 덮인 산을 그렸다. 그도 그럴 것이 눈을 뜨면 보이는 산, 산, 산이니 당연한 일이다. 내가 3일간 묵은 숙소에서도 아침마다 일어나면 보였다.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가.

마차푸차레는 물고기 형상을 닮았다. 피시테일이란 별칭을 얻은 뾰족한 이 봉우리가 묘하게 다가왔다. 마차푸차레를 가만 보고 있는데 그 산이 내게 말한다. 신이 낚시를 드리웠는데 네팔 사람들이 너무나 간절히 그를 원해서 네팔에 남겨졌다는 탄생 비밀을 내게만 불러주었다. 네팔 사람들에게 알려줘야 하기에 나는 이 탄생 비밀을 받아 적었다. 신과 내가 통했다. 시가 되었다.

한국에서 8년간 노동자로 일했던 `람`이라는 자원봉사 친구가 이 시를 네팔어로 번역을 했다. 그리고 네팔 시인이 다시 한 번 다듬었다. 마침내 모두의 앞에서 네팔어로 번역된 시와 한국어로 된 시가 발표되었다.

이 시가 발표되자 네팔 시인들이 엑설런트(excellent)를 외치며 악수를 청해왔다.

정말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시를 써서 이렇듯 자랑스럽긴 처음이었다. 말도 통하지 않는 오지에서 시를 썼고 그들이 미처 생각지 못했던 산의 전설을 내가 들려주었다고 생각하니 그렇게 가슴이 벅찰 수가 없었다. 비행기를 타고 나가는 순간부터 애국자가 된다더니 김연아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을 때 이렇게 기뻤겠지 라는 어울리지 않는 잣대까지 들이대어 맞춰보는 동질감이라니.

다른 나라에서 온 이방인이 한 편의 시로 짧은 전설을 하나 선물했다는 끝 모를 자긍심에 잠이 오지 않았다. 그 시는 내 능력에서 나온 게 아니라 히말라야가 네팔에 온 우리를 반겨 맞는 선물이었을 것이다. 분명코 그럴 것이다.

한 편의 시가 누구의 전설이 될 수도 있는 일이구나. 작고 작은 전설들이 우리 곁엔 얼마나 많은가? 세상에 하찮은 것이란 없다. 개똥벌레도 바삐 나는 이유가 있다.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 숨결을 불어넣는 일. 마침내 낯선 세상끼리 공통분모를 찾는 일을 짧은 시가 해낼 수도 있다. 함축하고 함축된 언어로 긴긴 전설을 만들어내는 시. 나는 시에게 뜨겁게 경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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