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까만 눈동자를 빛내며 한 발 다가선다. 3년차 새내기 교사. 열정과 다정함, 교직에 대한 자부심으로 언제나 학생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교사다. 그녀가 담임을 하는 학급엔 항상 무언가 새로운 활기가 넘치곤 했다. 퇴직을 고민하는 나에겐 그녀의 수업, 그녀의 소통이 부럽기도 했다. 젊은 예비교사들이 2년 3년 기약 없는 내일을 꿈꾸는 현실을 생각하면 내 자리를 그들에게 내어주는 게 옳은 건 아닌가 생각이 들 때가 없지 않지만 분명 나는 삼십대의 나와는 다른 모습으로 의미 있다.

열일곱. 이제 막 고교생이 된 미영이(가명)는 아직 자신이 왜 인문계 고등학교에 와서 야간까지 학교에 매어 있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녀석이다. 막 끝난 수업은 `책읽어주는 도서관` 수업이었다. 모둠별로 한 권의 책을 다양한 방식으로 친구들 앞에서 읽어주는 수업인데 한 시간 동안 서서 책을 읽으려니 다리도 아프고 힘이 들었던 모양이다.

"선생님, 앉아서 읽으면 안 돼요?"

"그냥 서서 읽어보자. 선생님 심정도 이해해 보고 재밌잖아?"

"선생님은 돈 받고 서 있잖아요."

"……"

아마, 내가 삼십대였다면 버럭 소리부터 지르며 화를 냈을 상황이다. 학생과 서로 상처를 주고 받았겠지. 그런데 미영이의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이고, 미영아, 너, 너무 불쌍하다. 어쩌면 십 년동안 한 번도 돈 받고 가르치는 선생님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선생님이 없었니? 진짜 없었니?"

아이를 끌어안고 등을 토닥토닥 두드렸다. 미영이의 학창 시절이 아프고, 마음이 시렸다. 좋은 선생은 어디 있는 건가. 한 달 뒤, 미영이는 조심스럽게 나를 찾아왔다.

"선생님, 죄송해요. 사과할 기회를 바로 찾지 못해서 망설이다 이제야 왔어요."

다시 한 번 미영이를 안아 주었다. 오십이 되고 보니 좋은 점도 있다. 별로 화 날 일이 없다는 게 가장 큰 좋은 점이다. 느긋한 이해는 나이와 비례하고, 누구에게나 노년은 찾아오는 거니까. 그래서 나는 정년까지 내 자리를 지키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조심스럽다.

송숙영 부여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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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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