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상·동상 활성화 역사 계승 사회 발전 이끈 희생 기억을

러시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흉상과 동상이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라는 대목으로 한국인에게 익숙한 러시아 근대 문학의 창시자이자 오늘날 러시아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소설가로 평가 받는 알렉산드로 푸시킨, 러시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혁명가 블라디미르 레닌. 이들의 업적과 러시아에 끼친 영향력을 보았을 때 러시아 거리 곳곳에 있는 푸시킨과 레닌의 흉상과 동상은 광화문 광장의 세종대왕, 이순신 동상 만큼이나 자연스럽고 당연히 받아들여지는 것들이다.

이들 흉상과 동상 외에도 러시아 마을 곳곳엔 이방인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 누군지 알 수 없는 흉상과 동상을 쉽게 볼 수 있다. 해당 구조물의 안내문을 읽어 보거나, 때론 안내문 조차 없어 마을 주민에게 물어보면 누군지 알 수 없었던 흉상과 동상의 주인공은 해당 마을 출신의 2차 세계 대전 영웅, 자랑스러운 소방관등 마을을 빛낸 인물 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동상과 흉상에는 러시아 전승 기념일이나 또는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헌화가 바쳐져 있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러시아에 살면서 부러운 모습 중 하나이다. 러시아는 자신들의 영웅을 기억한다. 이런 환경 속에선 자신의 희생이 헛되지 않고 기억될 것임을 자연스레 배우게 될 것이다.

전시와 같이 국가의 발전과 수호를 위해 개인의 희생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불가피하게 강요 할 수 밖에 없는 상황도 있지만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고 전체의 효용을 위해 개인의 희생이 필요한 순간 그 판단은 개인의 몫이다.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난 현장에서 전체의 안전을 위해 자신의 몸을 던져 범인을 제압하는 사람을 우리는 영웅이라 칭하며 그의 용기와 희생정신에 갈채를 보낸다. 그 상황에서 도망간 사람에 대해 우리는 비판 할 수 없다. 누구나 자신의 생명이 우선이며 타인의 큰 아픔보다 자신의 작은 아픔이 더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즉 전체의 효용이 분명한 상황에서 개인의 이기심을 앞세워 개인적인 선택을 하는 것에 대해 비판 할 수 없다.

때론 개인의 이기심이 전체를 위한 원동력이 될 수 도 있기 때문이다. 가족 부양 의무를 등한시 한 채 연구에 몰입한 과학자가 인류를 위한 백신을 개발할 수 도 있는 일이다.

다만 전체를 위한 희생정신이 SNS의 일회성 여론몰이로 끝난다거나, 손해 보는 행위라며 조롱거리가 되거나 또는 개죽음으로 치부되는 일은 없어야 될 것이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의 6·25 참전 용사에 대한 대우나 군인 장병 대우에 관한 뉴스를 접하다 보면 전체를 위한 개인의 희생은 손해라는 댓글을 목격한다. 이러한 부정적인 댓글은 희생정신에 빈약한 사후 조치에서 비롯된다. 사후 조치가 꼭 금전적인 지원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음을 기억해주고 존경 해주는 것이다.

길을 걷다 땅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는 것부터, 도로 위 구급차를 위해 길을 터주는 것 등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전체를 위한 개인의 희생을 찾아 볼 수 있다. 희생이란 전체를 위해 자신의 안전, 시간, 금전적 손해를 감수 하는 것이다. 크고 작던 전체를 위한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는 건 바보 같은 행위라고 인식되어 극단적 이기주의로 나아간다면, 이는 인류가 기껏 이뤄놓은 사회, 공동체 생활을 벗어나 혼자서 수렵하며 살아가는 원시로 회귀하는 꼴이 될 것이다. 그러기 전에 우리도 당신의 희생이 기억되며 존경 받게 될 것임을 알려 줄 수 있는 러시아의 동상과 흉상과 같은 매개체가 필요하다.

김정필 LG 전자 러시아 법인 구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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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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