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아산 민간인 희생자 실태와 현재 下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과거사위원회)는 한국전쟁 시기인 1950년 9월 말부터 1951년 1월 초까지 최소 77명 이상이 인민군 점령시기 부역했다는 혐의와 그 가족이라는 이유로 온양경찰서 소속 경찰과 대한청년단, 청년방위대, 향토방위대 등에 의해 배방산 방공호와 폐금광, 염치면 대동리, 선장면 군덕리, 탕정면 용두리1구, 신창면 일대 등에서 집단 살해됐다고 밝혔다.

과거사위원회는 전시 계엄 하에서 국민의 기본권이 제한되는 시기였다 해도 무장한 경찰 및 치안대가 단지 부역했다는 혐의, 또는 그의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민간인을 적법한 절차도 없이 살해한 행위는 명백한 위법이고 헌법에서 보장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결정했다. 과거사위원회는 이른바 `아산 부역혐의 희생 사건`으로 숨진 민간인이 최소 800여 명에 이른다고 추정했다.

과거사위원회의 진실규명 결정 이후 아산 부역혐의 희생 사건의 유족들은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2012년 3월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013년 6월 원고 일부 승소 판결로 유족들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대한민국 공무원인 경찰이 대한청년단 등의 치안대와 함께 직무집행의 외관을 띤 행위를 통해 법령을 위반해 아산 부역혐의 희생 사건 희생자들을 살해해 그들과 그 유족들에게 정신적 고통을 가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제헌 헌법 27조에 따라 대한민국은 소속 공무원의 위법한 직무집행으로 인한 아산 부역혐의 사건 희생자들과 그 유족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시했다.

정부는 서울중앙지법의 판결을 수용할 수 없다며 상소했다. 서울고등법원도 원고인 희생자 유족의 일부 승소를 판결했다. 사건은 대법원까지 갔지만 지난해 5월 대법원의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하급심 판결이 확정됐다. 아산 부역혐의 희생 사건은 법률적으로도 진실이 규명됐지만 위령 사업은 지지부진하다.

아산시는 시의회 발의로 지난 7월 `아산시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추모에 관한 조례`를 공포했다. 조례에 따르면 시는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위령사업, 민간인 희생자와 관련된 자료의 발굴·수집 및 간행물 발간 등의 사업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조례는 제정됐지만 아산 부역혐의 희생 사건의 위령사업을 위해 시가 내년 예산안에 편성한 돈은 한 푼도 없다.

시는 아산 부역혐의 희생 사건의 실태 파악에도 손 놓고 있다. 과거사위원회의 진실규명 결정 이후 시는 2010년 6월 탕정면 이순신대로변에 `아산 부역혐의 희생사건 희생지`를 알리는 안내판을 세웠다. 안내판까지 설치했지만 시 자치행정과 관계자는 "아산의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들의 자료는 집계된 것이 없다"며 "위령 사업의 예산 편성이나 계획은 없다"고 무관심을 드러냈다. 시는 아산 부역혐의 희생 사건의 위령 사업은 등한시하는 반면 좌·우 이념 대결 속에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들의 또 다른 위령 사업인 `자유수호합동위령제`에는 매년 시 예산을 지원해 대조를 보였다.

김영애 아산시의회 의원은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위령 사업에 시가 관심을 갖고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끝- 윤평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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