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 일종의 시혜 아닌 인권 최후의 안전·보호장치 모든생명 부처만큼이나 귀중 사회적 약자도 함께 보듬어야

한국의 불교도라면 누구나 익숙한 말 중의 하나가 `일체중생실유불성(一切衆生悉有佛性)`이라는 말이다. 풀어 쓰면, 다음과 같다.

"생명 있는 존재라면 이미 모두가 다 부처이다. 다만 부처인 줄을 모를 뿐이다"

불교에서 부처는 완성된 인간을 말한다. 완성되었다는 것은 달리 `모든 고통으로부터 벗어난 존재`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만큼 고귀해서 존경받아 마땅한 존재이기 때문에 `위 없는 스승`이라 불리고, 아직 어리석음에 얽매여 고통을 받는 중생들을 온갖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을 가르친 분이기에 `공양(식사) 받을 만한 자격을 갖춘 분`이라고 불린다. `일체중생실유불성`이라는 말은 모든 중생이 그런 고귀하고 존경받을 만하며, 공양대접을 받기에 충분한 분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곧 중생이 바로 부처라고 하는 선언이다. 이 세상에 부처만큼 고귀하지 않은 생명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 아무리 들어도, 우리는 그냥 `아, 그런 이야기도 있구나.` 하고는 말아버린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 이야기를 모토로 하는 불교 경전이 중국에 전해지고 100여 년이 지났을 때, 신행(信行)이라고 하는 스님이 그런 경우이다.

신행스님은 모든 사람이 그리고 생명 있는 존재라면 모두가 부처와 똑같이 고귀하고 존경받을 만하다는 이야기를 진짜로 믿었다. 다만 한 가지는 믿지 못했는데, `스스로가 부처라는 것`은 믿지 못했다. 자기 마음속에 일어나는 번뇌를 바라보니 아무래도 자신이 부처라는 사실만은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스님이 천하를 통일한 수나라의 도읍인 장안(오늘날의 서안)에 머물 때 행한 일 중에 특기할 만한 일로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만나는 사람마다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부처님에게 절하듯이 절을 올린 것이다. 당신은 부처님과 똑같은 분이니, 아직 부처답지 못한 나의 공경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라는 뜻이다. 두 번째는, 직접 농사를 지었는데 농사짓는 밭을 두 가지로 구분했다. 하나는 경전(敬田)이라고 해서 부처님께 받치기 위해 농사짓는 밭이었다. 세 번째는, 무진장원(無盡藏院)이라고 하는 일종의 금융기관이었다. 형편이 되는 사람들이 복을 짓기 위해 사찰에 기금을 적립하면, 필요한 사람들이 대가 없이 가져가는 액수만 기록했다. 그냥 먹고 살다가 갚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나중에 몇 배로 되돌려서 기금을 적립하는 사람도 있었다. 모아진 재물을 빈궁한 사람들이 가져다 사용하게 했는데, 막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이 신행스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그룹을 삼계교라고 했는데, 아주 크게 번성했기 때문에 황제는 백성들의 민심이 이반할까봐 두려워했다. 장장 3백 년 동안 탄압을 당한 뒤에 이 불교그룹은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런데 삼계교는 사라졌는데, 무진장이라고 하는 금융기관은 여러 가지로 이름을 바꾸어서 중국과 한국의 사찰에 살아남았다. 무진재 혹은 무진보라는 이름으로 역사서 속에 종종 등장하는 그것이다.

다른 말을 하고픈 것이 아니다. 불교 기독교를 가릴 것 없이, 전근대 사회에서 종교는 사회복지라는 측면에서 그리고 인권의 보호라는 측면에서 최종적인 구제장치이자 안전장치로 기능했다. 그런데 근현대 사회에서는 전근대 사회에서 종교가 했던 이 역할을 국가가 떠맡는 경우가 대부분이 되었다. 이른바 사회복지국가이다.

그런데 사회복지란 것은 아주 간단히 말하자면,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온전히 고귀한 존재인 사람들과 생명을 그 온당한 만큼 대우해주어야 한다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사회복지를 우리가 가져야 하는 것을 떼어내서 나누고 베풀어주는, 일종의 시혜처럼 생각한다. 시혜가 아니다. 함께 살아가는 고귀한 존재가 마땅히 받아야 할 만큼 주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약자들은 그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받지 못한 이들이다. 이렇게 생각할 때 진정한 종교인 삶, 진정한 공동체의 삶이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석길암 금강대 인문한국연구센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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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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