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다른데 그림은 닮았다. 모방과 표정, 진작과 위조 등 원조논쟁이 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하지만 표절논쟁에 자유로운 두 작품이 존재한다. 모방이 분명한데도 시비가 전혀 없다. 역설적이지만 되레 두 작품 후한 대접을 받고 있다. 화가의 국적이 다르고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의 정서가 각기 다른 탓일 게다.

모리스 드 블라맹크(1876-1958)의 `파이프를 문 남자(1900)`와 본보를 통해 게재했던 구본웅(1910-1937)의 우인상(友人像·연도미상)이 그렇다. 구본웅이 블라맹크에게 사사한 일본인 교수한테 배웠고 화집 등을 통해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대체적인 시각이다. 우인상은 이미 게재됐기에 생략하고 `파이프를 문 남자`만 읽어보려 한다.

그림을 찬찬히 살펴보자. 표현주의와 야수파 기법으로 그려 칙칙하고 혼란스럽다. 초점이 맞지 않은 사진처럼 형체가 흐트러져 있다. 그림 속 남자는 모자를 비스듬히 눌러 쓰고, 파이프를 옆으로 삐딱하게 물고 있다. 헝클어진 듯 제멋대로 날리는 뽀얀 담배 연기가 한데 어우러지면서 불량기가 가득하다. 담배 연기 사이의 휑한 큰 눈에서는 광채가 일 듯 매섭다. 관람자를 단박에 사로잡을 만큼 강렬하다.

얼굴을 휘감은 담배연기가 빛에 반사되면서 얼굴이 창백해 보인다. 이 때문인지 다홍빛 목도리와 모자, 그리고 입술이 유난스럽게 붉은 색으로 도드라져 보인다. 서양남자의 코가 크기도 하지만 기형적으로 콧날이 우뚝하게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입은 옷도 말끔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후줄근하지만 멋은 부릴대로 부렸다. 한마디로 제멋에 사는 노는 남자다.

야수파 작가 중 가장 야수적인 열정을 소유한 블라맹크의 본색이 돋보이는 그림이다. 자유분방한 기질과 본능도 한몫을 했다. 스스로 예술의 본질은 본능이라고 했을 정도로 예술을 추구하는 영혼이 자유로운 정열적인 화가였다.

본래 블라맹크는 미술을 전공한 화가가 아니다. 12살부터 독학으로 미술공부를 했고 화가 친구들을 알면서 본격적으로 그림을 배웠다. 악단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거나 기계공으로 일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다. 고흐의 작품에 감화돼 강렬한 원색과 분방한 필치를 본받았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고흐의 흔적도 보인다. 튜브에서 물감을 짜내 캔버스에 원색 그대로 칠하는 기법으로 그림을 그려 강렬한 힘이 느껴진다. 충남문화재단 문화사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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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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