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실수를 통해 배우는 시기 자신을 비난하는 시선에 일탈 마음을 읽고 상처 어루만져야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는 다양한 아이들이 오간다.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진로상담을 받으러 오는 아이들도 있고, 보호관찰 중인 아이들과 학교 밖 청소년도 있다. 얼마 전에는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가 가출을 해서 센터에 나타났다. 참 다행인 것은 스스로 청소년전화 1388로 보호를 요청한 것이다. 가족과 갈등을 겪으면서 충동적으로 집을 나왔지만 자기를 더 위험에 빠뜨리지 않기 위해 애를 쓴 셈이다.

어찌 보면 소녀의 개인사는 평범하지만 본인 입장에서는 너무 힘들고 복잡하다. 가출 상태라서 학교에 가지 못하는 것이 불안하지만 괜찮은 척한다. 자기도 잘 하는 것도 있는데 형제자매들과 비교당하면서 가족들에게 인정받지 못해서 슬프다고 했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실존을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거나 자신으로 존재하지 못하는 현존재의 가능성으로 묘사한다. 본래적인 현존재는 현존재로서 자신의 고유한 존재에 대해서 결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솔직하게 시인하고 떠맡는 사람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이와 달리 비 본래적인 현존재는 자기 자신에 대한 책임을 떠맡아 오지 않았기에 남들이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삶의 방식을 쫒아서 산다.

우리의 실존은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 스스로 책임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는 현존재에게 그가 존재할 수 있는 일련의 특정한 방식들과 이러저러한 수단들을 제공한다. 세계는 우리가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영역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또한 우리가 군소리 없이 복종해야만 하는 규준들을 제시하기도 한다. 가출한 그 소녀는 자기의 세계 역할을 하고 있는 가족들이 제시하는 규준들을 받아들일 수 없다. 공부를 잘 하지 못하기 때문에 가족들이 원하는 공무원이 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소녀는 나름 `커서 무엇을 해야 하나` 진로에 대한 고민을 했지만, 코웃음을 치며 자신의 현존재 자체를 비난하는 가족들로부터 뛰쳐나와 버렸다. 그리고 상담실 한 편에 쪼그리고 앉아서 현존재를 경험하려고 끊임없이 친구들에게 스마트폰을 눌러댄다. 소녀는 이제 `가출`사건으로 인해 비행청소년으로서의 현존재를 경험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소녀뿐만 아니라 요즘 아이들은 진로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하면서 주로 `네가 알아서 해라`와 `공무원, 의사, 교사`가 있다. 라고 말하는 어른들을 만난다. 그것이 어른들이 현존하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이러저러한 태도를 취할 수 있는 현존재의 능력은 그들이 속한 가정이나 학교 안에서 자기 자신과 관계하고 다른 사람들과 관계한다는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한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현존재가 마땅히 따라야 할 존재방식이 확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언제나 현존재가 무엇으로 존재하는 지는 그가 내리는 결정, 그가 가꾸고 조성하고 훈련시키는 기술이나 습관 등을 비롯해서 그가 존재하는 세계 안에서 봉착하게 되는 대상 즉 가족이나 학교 등이 함께 만들어내는 복합적인 산물인 것이다. 아이들은 자기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물이나 세계와 아무런 상관없이 자기 위주로 살아가는 주체가 아니다. 하이데거는 현존재란 근본적으로 `세계-내-존재`라고 말한다. 아이들은 가족과 학교와 우리 사회 안에 존재하는 현존재이다.

하이데거의 말을 빌리면 소녀는 비 본래적인 현존재가 되지 않기 위해서, 즉 남들이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삶의 방식으로 살지 않으려고 시도했지만 학교와 가정에서 외면당하고 만 것이다. 물론 어른들의 눈으로 보면 실수투성이인 아이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아이들은 실수를 통해서 배운다는 것이다. 그 실수로 인한 생채기가 심각해서 어른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만, 그 상처를 보듬어 주고 딱지가 질 때까지 기다려주면 아이들은 쑥쑥 자란다. 이제 가출 사건을 마무리하고 있는 소녀에게 응원을 보낸다. 우리 어른들은 너에게 좋은 세계를 경험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단다. 네가 속한 세계 내에서 본래적인 현존재로서 존재하기를….

류권옥 세종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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