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과서 문제 혼란 권력·이념대립 자화상 보-혁 갈라져 저항 매몰 상대존중 대응논리 필요

교과서파동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교과서 하나 갖고 이렇게 피터지게 싸워야 하나. 그 싸움에 끼어든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그들이 의도하는 바는 무엇인가. 우리나라가 왜 이렇게 되었나.... 사실 정상적인 나라라면 이런 싸움은 안해도 되는 싸움이다.

이렇게 싸움이 치열한 이유는 대충 크게 봐서 두가지다. 하나는 권력과 이권이요 다른 하나는 역사를 보는 눈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당장 여야는 내년 선거, 내후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다. 선거에서는 승기를 누가 잡느냐, 자기편을 얼마나 뭉치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이런 정치공학에 정통하다. 적당한 시기에 이슈를 던지고 이를 계기로 상대를 제압하려고 한다. 이런 것이 대세형성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유경쟁이 보장되는 민주주의 정치과정의 어두운 면이기도 하다. 이런 일은 앞으로도 수없이 일어날 것이지만 국민이 민주주의에 숙달이 된다면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는 일이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역사, 특히 현대사를 보는 눈이다. 대표적인 시각의 하나는 노무현 전대통령이다. 그는 대한민국은 태어나서는 안될 나라라는 표현을 썼고 별놈의 보수를 다 갖다놔도 보수는 보수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독설이기는 하지만, 이런 시각을 갖고도 대통령이 되었으니 진보의 시각을 상당부분 반영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보수적 시각은 전혀 다르다. 자랑스런 대한민국이고 성공한 나라다. 이 성공의 이면에는 이승만과 박정희, 두 대통령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두 사람 다 장기집권을 했고 권위적 통치를 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따라서 공과(功過)가 분명하다. 이승만은 독립운동과 건국의 공이 있다. 평생을 민주주의와 독립운동에 바치다시피 했고 남북분단과 좌우대립 속에서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박정희는 수천년의 한이었던 가난을 극복하고 경제부흥을 일궈내 한강의 기적이라는 소리가 나오게 했다. 그러나 이들의 통치과정에서는 민주주의 파괴, 부정부패, 인권유린 등의 과오가 동반되었다.

해방후 70년의 현대사는 보수정권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보정권은 김대중-노무현의 10년이 전부다. 해방 직후의 미군정 3년도 보수세력이 힘을 쓴 시기다. 결국 보수의 장기집권이 진보를 더 뭉치게 했고 보수에 대한 반동으로서 이번 교과서파동의 배경에 있는 진보적 민중사관도 세를 얻게 되었다. 그런데 보수에 대한 저항과정에서, 특히 유신과 전두환 통치시절에 진보세력의 일부가 북한 김일성을 추종하게 되면서 전통보수를 극도로 자극하게 된 것이다. 유신과 전두환 통치는 잘못된 것이지만, 이에 대한 반동으로서 김일성을 추종한 것은 홧김에 칼을 쓴 것이나 마찬가지다. 더 심각한 문제는 과거 특정시기, 보수에 대한 저항수단이었던 논리적 무기들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상은 바뀌었다. 1987년 6월 항쟁을 계기로 대통령직선제가 이뤄지고 그 후로 28년 동안 아무런 사고없이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를 비롯하여 절차적 민주주의가 본궤도에 올라와 있다.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이제 유신과 전두환 시대처럼 물불 안가리고 저항해야 할 대상은 없어졌다. 그렇다면 대응논리와 수단도 달라져야 한다. 민중사관이니 주사파니 하는 등의 극단적 저항논리는 이제 시효가 지나도 한참 지났다. 또한 대한민국이 서있는 이 땅의 특별한 조건이 중요하다. 서구와 같은 좋은 조건을 기준으로 평가할 수 없다. 그들 선진국이 수백년의 노력 끝에 이룩한 민주주의 씨앗을 옮겨 심는 과정에서 많은 문제가 생겼다. 같은 씨앗이라도 기후와 토양조건이 다르면 문제가 생긴다. 오랜 동안 중국과 일본에 종속되었던 우리의 독특한 역사와 국민적 기질, 남북분단과 6·25 동족상잔, 지금도 계속되는 남북충돌과 위기상황, 비좁은 국토와 천연자원의 부족 등등 필요조건들의 척박성을 고려해야 한다. 우물가에서 숭늉 찾지 말라는 말이 있다. 숭늉이 되려면 시간이 필요하고 또 그때까지 기다릴 줄 아는 인내가 필요한 것이다.

순천향대 대우교수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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