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방신문협회 공동기획

국회의원 선거구획정 논의가 자취를 감추고 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으로 정국이 냉각되면서 정치권은 선거구 획정에 대한 논의와 작업을 방치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내년 4.13 국회의원 선거를 제대로 실시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지경이다.

선거구 획정 작업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어려움은 표의 등가성 원칙, 그리고 농촌과 지방의 대표성, 이 두 가지 가치를 어떻게 균형 있게 담아내는가에 있다. 지난해 10월 30일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지역구 간 최대 편차가 3:1에서 2:1로 줄게 되었는데, 이러한 판결은 표의 등가성을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거부하기 어렵다. 문제는 이러한 새로운 기준에 따라 선거구를 획정할 경우 대도시에 비해서 농촌 지역, 그리고 수도권에 비해서 지방의 대표성이 상대적으로 훼손될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이러한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안들이 제시되어 왔지만, 그 어떤 방안도 쉽게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여야 간에, 각 지역 간에, 그리고 각 정치인 간에 정치적 계산이 다른 이유도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의원 정수가 고정되어 있다는 것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이러한 난맥을 해결하는 가장 명쾌한 해결책은 의원 정수의 확대에 있으나, 주요 정당들은 여론을 의식한 탓인지 이를 강력하게 주장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게임을 하고 있는 듯도 하다.

앞으로 의원 정수가 확대된다면 다행이겠지만, 만약 그렇지 못한다면 결국 농촌과 지방의 대표성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보게 될 것이 뻔하다. 국회가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고, 그렇다고 비례대표 의석을 줄여서 지역구 의석을 늘리는 퇴행적인 행태를 보이기도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선거제도 개혁을 통한 권역별 비례대표제의 도입, 개헌을 통한 미국식 상원제의 도입 등 지방의 대표성을 보장하는 제도적 방안은 여러 가지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들 모두 현실화하기에 쉽지 않다. 이번 선거구 획정 논의에서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학계에서는 의원정수의 확대와 권역별 비례대표제의 도입 방안을 제시했지만, 현재로서는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지 않다. 상원제 도입 방안은 개헌이라는 더 큰 현실적 어려움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향후 보다 제도화된 방안 마련의 기반이 될 수 있는 것은 자치단체장들 간의 긴밀한 협력을 통한 지방의 목소리 키우기이다. 현재 수도권에 비해 지방이 과대(?) 대표되고 있는 유일한 부분이 자치단체장이다. 이들이 힘을 합쳐 수도권에 비해 불이익을 받고 있는 지방의 대표성을 제고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만 한다.

물론 전국시도지사협의회, 전국시장군수구청장 협의회가 이미 존재하고 있고 나름대로 협력을 도모하고 있지만, 이들이 수도권에 반해서 지방의 이익을 효과적으로 대변하는 경우는 발견하기 쉽지 않다. 시도지사들 간에 협력을 이끌어 내는 것이 어려운 근본 이유는 소위 `죄수의 딜레마 게임`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 시도지사의 입장에서는 서로 힘을 합해 중앙정부와 수도권에 대항하여 지방분권을 가속화하는 등 지방 전체의 이익과 대표성을 도모하기보다는 중앙정부에 잘 보여서 자기 지역에 더 많은 예산과 기관을 유치하는 것이 개인적으로 더 이익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지방 전체의 이익 도모는 어려워진다.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설득력과 적극성을 갖춘 리더십이 필요하다.

물론 지방자치단체의 협력을 통한 지방 대표성 제고는 임시방편적인 방안일 뿐이다. 그러나 일단 이렇게 협력의 경험을 통해 정치적 힘을 결집해야만, 향후 보다 제도화된 지방 대표성 보장 방안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생길 것이다. 현실 정치에서는 결국 힘이 중요하며, 힘은 합해야 커진다는 단순한 명제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김욱 배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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