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북화가 이쾌대(1913-1965)는 남과 북 모두에서 금지된 이름이었다. 자진 월북한데다 북한에서도 숙청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런 화가가 해금과 함께 벼락같이 나타나 단숨에 남북한을 통틀어 최고의 화가 반열에 올랐다. 남한에 홀로 남은 아내가 40년간 엄혹한 반공 정권하에서 감시의 눈의 피해 남편의 작품을 고이 간직해온 순애보 덕분이다.

대표작 `군상Ⅰ-해방고지(解放告知·1948)`는 이쾌대 그 자체다. 근대미술사를 다시 써야할 정도로 존재감이 대단한 명작이다. 젊은 나이에 그린 탓인지 활력과 기운이 넘쳐난다. 그림 속 인물의 표정에서 한국적 인물화의 특성과 한국적 서양화를 치열하게 모색했던 이력이 엿보인다. 그림은 제목이 암시하듯 그림의 주제는 국민들에게 해방을 알린다(告知 )는 의미다. 일제 강점기의 처절했던 상황과 해방의 환희를 은유하고 있는 대서사시다. 처절한 저항과 희생, 해방의 기쁨을 파노라마식으로 열거하듯 구성했다. 스케일도 장대하다. 작품은 해방 후 3년이 지나 완성됐지만 실제는 해방 1년 전에 그렸다고 얘기가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하단의 주검은 36년간 일제로부터 받은 고난을, 오른편 남녀 군상은 일제에 대한 분노와 해방의 열망을, 그리고 마치 나는 듯 달려오는 왼편의 두 여인은 해방의 기쁨과 감격을 전해주는 전령사를 상징한다.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다. 두 여인은 해방을 전해주려 달려오는 것이고, 마주선 듯한 군상은 기쁜 소식을 전달받는 일제의 압박에 시달려 온 민초들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마치 몽타주하듯 그린 장면마다 복합적인 감정을 옴니버스 식으로 연결시켜 그림의 내용을 마치 이야기하듯 설명을 하는 듯하다. 암울했던 과거 식민지 시대와 해방된 현재는 물론 앞으로 전개될 미래까지 암시하고 있음이다.

이쾌대는 경북 칠곡 출신으로 동경제국미술학교를 졸업했다. 6·25 당시 서울에 살던 화가는 노모와 만삭의 부인 때문에 피란을 못 갔고, 인공 치하에서 김일성 초상화 등 북한의 선전미술 제작에 강제 동원됐다가 전쟁이 끝난 후 포로수용소에 수감된 후 1953년 남북한 포로 교환 때 북한을 택했다.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을 남겨둔 채 북을 선택한 것은 부역의 전력과 친형의 월북 등으로 남한에서의 생활이 녹록치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충남문화재단 문화사업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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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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