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과서 전쟁 언제까지 공론의 장에서 머리 맞대고 '객관적 사실' 부터 합의를

지은이가 `태사공서(太史公書)`로 지칭한 사기(史記)`만큼 치밀한 고증을 거친 역저는 없다. 궁형을 당한 사마천은 처절한 인간적 고뇌를 불세출의 저서로 승화시켰다. 두드러진 건 금석문(金石文)과 문물(文物), 회화, 건축을 망라해 치밀한 고증을 거쳤다는 점이다. 이전의 사가(史家)와는 한 차원 다른 접근 방식이었다. `중국 고대사를 사관(史觀)에 입각해 기록한 최초의 역사서라는 의미를 넘어 선다`(단국대 김원중 교수)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동양 역사서의 근간이자 인간학의 보고로 불리지만 한계가 없지 않다. `사기`에는 자신을 거세한 한 무제에 대한 원망이 전편에 스며 있다. 곳곳에서 무제의 치세와 행적을 비판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태사공왈(太史公曰)`이라는 서술 체계는 객관과 주관의 균형추로 작용하면서 읽는 재미와 함께 신뢰를 높인다. 무제를 향한 주관적 감정을 어쩌지 못하되 사실과 의견을 분명히 구분하는 서술 방식이다.

2000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어떨까.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서 유관순 열사의 3·1 운동 관련 부분은 서술자의 주관이 사실을 어떻게 왜곡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사회주의 중심의 항일(抗日)만을 독립운동의 주류로 삼다 보니 유 열사가 앞장선 만세운동은 폄하되고 말았다. 사실 자체도 그러려니와 중요성에서 뒷전으로 밀려났다. 지난해 국사편찬위원회의 검정심사를 거친 8종의 고교 한국사 교과서 중 4종이 일제 침략과 3·1 운동을 설명하면서 유 열사에 관한 내용을 제외시켰다. 이 와중에 "유관순은 친일파가 만들어낸 영웅"이라는 망언이 나왔다.

사실이 달라도 크게 다르다. 유 열사의 아우내장터 만세운동에는 3000여 명이 구름처럼 참여했다. 호서지역 항일독립 만세운동 중 규모가 가장 컸다. 일제는 만세운동 이후 처음으로 총격을 가해 19명이 숨졌지만 참가자들은 무저항으로 일관했다. 이 운동은 세계사적으로 큰 영향을 끼쳐 간디의 무저항주의를 낳았다. 유 열사는 다음해 9월 이화학당 시절의 단체사진과 수형표, 재판 기록이 담긴 형사기록부 단 3가지를 남기고 순국했다. 역사적 사실이 이런데도 반미·반기독교적인 좌파는 유 열사를 애써 외면해왔다.

사실 역사를 어떻게 인식하고 가르칠 것인가는 영원한 화두다. 19세기 초 독일의 역사가인 랑케는 사가의 임무를 "그것은 실제로 어떠했는가"라는 말로 요약했다. E. H. 카는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정의하면서 반기를 들었다. 카가 사료에 집착하는 사가들을 비판한 건 맞지만 사실(Fact)의 엄중함까지 배제하지는 않았다. 그에게 과거는 현재에 비추어질 때에만 이해될 수 있는 것으로 `거울`과 다를 바 없었다.

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둘러싼 극한 대립을 보며 `반 컵의 물`을 떠올린다. 누군가는 `반 컵밖에`라고 하고, 또 누군가는 `반 컵이나`라고 인식하는 그 차이는 `반 컵`이라는 명백한 사실이 전제되지 않고는 성립될 수 없다. 사마천은 `사기`를 저술할 당시 모두 103종의 책을 열람했다. 육경(六經)을 비롯한 서적이 24종, 제자백가서가 52종, 역사·지리서와 한나라 왕실의 문서가 20종, 문학서가 7종이다. 나아가 현지 조사에 목숨을 걸었다. 사실에 충실한 이 위대한 역사서가 나오기까지 무려 20년이 걸렸다.

교과서 전쟁을 중단하고 대한민국의 역사를 찾기 위한 공론의 장을 만드는 게 순서다. 다음 정부 때 검정화로 전환되지 않는다는 법이 없는 상황에서 국정화를 서두를 일이 아니다. 사마천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균형 잡힌 교과서`에 앞서 `사실에 부합하는 교과서`를 만드는 작업에 나서야 한다. 야권도 반대를 일삼을 게 아니라 건설적 대안 제시에 힘써야 한다. `국정-검정`이라는 도식과 이분법에서 벗어나 이성과 상식을 바탕으로 사실을 확립해나가는 게 급선무다. 그 것이야말로 `유신 미화`라는 등의 불필요한 구호를 방지하면서 대한민국의 위대한 성취를 역사에 새기는 길이 될 것이다.

서울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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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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