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파간 이해득실 대립각 갈등·분열만 갈수록 확산 뿌리 깊은 불신문화 노출 소통·배려 변화의 길 절실

요즘 한국사회 전체를 빨아들이고 있는 블랙홀 같은 이슈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이다. 이 이슈의 전개과정을 관심 있게 지켜보면서 필자가 해온 주된 일은 여러 행정학 지식으로 이 정책문제를 가능한 한 객관적이고 다면적으로 해석해 보는 것이었다. 국사교과서를 검정으로 할 것인가 국정으로 할 것인가가 쟁점이 되는 교과서 정책은 정책의 유형론으로 본다면 `상징정책`에 해당한다. 상징정책은 국민들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한 정책들로서 국민의 단결, 정부의 정통성에 대한 인식의 제고 등을 목표로 한다. 상징정책이 통상 갈등을 크게 수반하는 것이 아닌데도 이 사안은 그렇지 않은 것을 보면 특수한 상징정책으로 보인다.

교육부가 국사교과서를 국정으로 바꾸기로 한 것은 교육정책의 변화이다. 정책의 변화는 정책에 영향 받는 행위자들의 이해관계에 변화를 초래하여 그들 간에 갈등을 조성한다. 역사학자들에게 국정 체제로의 변화는 불리하다. 국정 체제보다 검정 체제에서 교과서 집필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다. 각급 학교는 국정 체제에서 교과서 선택권을 상실하는 손해를 입는다. 야당은 진보사관이 비교적 많이 반영된 검정 교과서 체제가 유리하다. 여당은 해석상 논란의 여지가 있는 근현대사를 줄이거나 비교적 중립적으로 다룰 수 있는 국정 체제가 유리하다. 근현대사는 현재의 여당과 야당의 뿌리를 다룸으로써 각각의 정통성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나아가 국정화 논란은 각 정당의 미래 고객을 확보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볼 때 국사 교과서 국정화 이슈가 정파 간 갈등을 일으키고 사학계의 반발을 부르는 것은 극히 당연하게 보인다.

일견 이 정책은 국사 교과서의 공급과 소비를 약간의 규제를 받는 경쟁시장에 맡기던 것을 정부가 독점적으로 공급하는 정부공급 방식으로 선회하는 것이다. 국사교과서 공급을 시장에 맡기지 못하겠다는 이유는 `무임승차`의 발생과 같은 통상적 공공재의 경우와는 다르게 보인다. 중고차 거래에서 정보를 많이 가진 판매자에 비해 정보가 적은 구매자가 낮은 품질의 자동차를 비싸게 사는 것처럼, 국사 교과서 선택에서는 정보가 거의 없고 선택권조차 없는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학교장이나 교사에 의해 흠이 있는 교과서 선택을 강요받는 문제를 중립성을 표방하는 국가가 나서서 교과서의 정부 직접 공급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국사교과서 뿐 아니라 교과서라는 재화는 이용자와 비용 지불자가 같은 통상적인 재화와 달리 재화를 직접 소비하는 사람과 그 재화에 비용을 지불하는 사람이 다르다. 학생들이 교과서로 공부하지만 그 대금은 다른 행위자가 치른다. 이런 경우 선택 행위는 재화 공급자에 대한 평판과 신뢰에 크게 의존한다. 재화를 선택하고 비용을 지불하는 사람은 그 재화를 몸소 사용하지는 않지만 그 공급자를 믿고 재화를 선택하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는 이유의 하나는 현행의 국사 교과서 공급주체들을 교과서 값을 지불하는 측이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초중등학교의 교과서를 검정으로 할 것인가 국정으로 할 것인가에 대한 결정권은, 초중등교육법 제19조 및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대통령령)에 따라 행정부의 중앙행정기관인 교육부장관에게 있다. 그런데 입법부의 주요 구성원인 야당과 여당이 나서서 교과서의 국정화 여부를 놓고 한바탕 쟁투를 벌이는 것은 야당이 법규정을 몰라서 그럴 리는 없다고 본다면 그 진정한 이유는 다른데 있음이 분명하다. 이것을 필자가 해석해 본다면, 그것은 야당이 국가기관인 교육부를 불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해보면 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의 한가운데 우리 사회의 불신문화가 깊이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국사교과서의 국정화 여부를 놓고 여야 정치인들은 이 논란의 정치적 득실을 따지기에 바쁘겠지만, 이 문제가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의 구성원 간 깊은 불신에서 비롯된 것임을 인식하고 우리 사회의 신뢰수준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일에도 관심을 가져주길 기대해 본다.

윤주명 순천향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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