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속한 경제성장 따른 무한경쟁 문제점 속출 공존·상생으로 극복을

2008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먼은 1997년 출간한 그의 저서 "기대감소의 시대"에서 1990년대 미국의 모습을 `기대감소의 시대`라 표현하였다. 크루그먼은 미국 국민이 처한 경제문제의 근본원인을 생산성 둔화, 소득분배 불균형, 실업 이렇게 셋으로 지목하며 이 세 가지 문제 중 특히 생산성 둔화를 해결하면 미국인들이 겪는 대부분의 경제문제가 풀릴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이에 대한 해결 방안으로 국민의 요구와 정치계의 과감한 결단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치사상적 측면에서 사회에 문제가 있음을 독자들에게 일깨우면서 진실을 말하고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저자는 현재의 경제문제가 풀리지 않는 원인을 국민들이 정치인에게 현실변화를 요구하지 않는 태도에 있음을 비판하면서 이러한 사회의 모습을 `기대감소의 시대`라는 말로 표현했다. 즉 무엇 하나 제대로 되는 것이 없는데다가 장래마저 암울하던 1990년대 미국의 모습을 빗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우리 사회의 현재 진행형이 아닌가 한다.

우리 사회는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룩하였으며 그 결과 국민소득 2만 불을 넘어섰고 그 과정에서 경제적 풍요를 누리는 계층들이 생겨났다. 그러나 특히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이 늘어나면서 중산층이 위축되고 근로빈곤층이 증가하는 등 양극화의 조짐과 함께 갈등과 분열이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최근 우리 사회는 몸살을 앓고 있다. 1960년 대 이후 쉼 없이 달려오면서 이제 성장의 의미는 약해지고 상대적으로 분배의 문제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다.

과거 우리 사회는 배고픔으로부터의 탈출을 꾀하기 위하여 앞만 보고 달려왔다. 선 성장 후 분배의 기치 아래 오로지 성장만을 지고의 선으로 여기며 달려오면서 사회는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가장 두드러진 것이 분배의 왜곡에 대한 분노와 자성이다. 한국사회가 분배의 왜곡이 심하다는 공격과 자성은 한국이 지향하는 자본주의적 가치 또는 시장 주의적 가치에 대한 심한 의구심을 낳게 되었다. 이는 단순히 정치인들의 이데올로기적 투쟁의 수준을 넘어 이제는 국민 개개인의 삶 속으로 투영되기 시작하였다. 반값 등록금,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동반성장에 대한 욕구, 골목상권 지키기, 무상급식 등 사회 전반에 걸친 요구들이 봇물처럼 터지면서 우리 사회는 매우 혼란스러운 국면으로 들어가고 있다. 그러면서 이제는 자본주의나 시장주의가 아닌 제3의 길, 예컨대 `따뜻한 자본주의` 또는`나눔의 경제`를 모색하여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어떤 이유로든 보호가 필요한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는 많이 존재하고 있다. 문명과 야만의 기준은 이러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들에게 아무런 보호 장치 없이 경쟁만 강요한다면 다윗과 골리앗을 맨손으로 결투시키는 야만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성장위주의 정책기조 속에서 야기된 무한경쟁구조의 폐해인 `자기만의 이익`을 챙기려는 각박한 사회분위기가 비인간적인 범죄로 되돌아와 사회문제를 야기 시키고 있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공존과 상생의 사회를 만드는 새로운 변화의 발상이 필요한 시점이다.

노블레스는 원래 `고귀한 신분(귀족)`이란 뜻이고, 오블리주는 `책임이 있다`는 뜻이다. 즉 노블레스로서의 신분과 지위가 사회적 승인을 얻기 위해서는 노블레스의 `고유속성` 으로서 `사회에 대한 기여와 봉사`가 명백히 입증되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사회지도층의 기부와 같은 사회적 책임의 이행은 국가의 영역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에서 부의 불평등을 개선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안전판 역할을 하게 된다. 나눔의 문화는 계층 간의 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으며 사회갈등을 완화하고 통합을 이룰 수 있게 하는 지름길이 된다. 공존과 상생의 사회를 만드는 지름길이 기부와 나눔이며 기부와 나눔은 고도의 문명사회를 이루고자 하는 시민으로서의 의무가 아닌가 생각한다.

정선용 풀뿌리희망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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