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기술 수많은 관점따라 논란 정치적인 이익 급급 갈등만 증폭 시대반영한 균형감각 중요 기준 진실 바라보는 관용적 시각 필요

역사교과서 국정화문제가 파동을 일으키는 것은 불가피하다. 역사를 보는 관점은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역사기술은 항상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최소한 다음과 같은 측면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인류의 역사는 언제부터 출발했는지 정확하지 않다. 100만년이라는 설도 있고 최근에는 300만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보도가 나왔다. 일단 100만년이라고 잡자. 현재 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민주주의 제도는 불과 100년의 역사다. 그렇다면 인류가 생긴지 99만9900년간은 이런 민주주의를 해보지 못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100년전 만 하더라도 여성에게는 선거투표권이 없었다. 여성의 보통선거참여는 1918년 영국의 선거법에서 처음 도입된 제도다. 그러나 비민주적 체제가 인류역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고 해서 100년 이전의 지도자들은 모두 나쁜 사람들이라고 매도할 수는 없다.

이런 잣대를 들이댄다면 세종대왕도 부정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결국 역사기술에 있어서는 그 시대, 그 공간의 상황, 그리고 역사기술자의 상식과 균형감각이 중요한 기준이 된다.

등소평은 모택동에 대해 공칠과삼(功七過三)이라는 평가를 한 바 있다. 모택동이라면 중국 혁명과 건국의 아버지로서 추앙받고 있는 인물이다. 드넓은 천안문광장 어디서도 모택동의 거대한 초상화가 보인다. 그런 모택동의 비중으로 보아 등소평의 평가는 과감하고 냉정했다는 생각이 든다. 야당의 대표도 박정희 전대통령에 대해 공칠과삼이라고 평가 한 바 있다. 중대발언이다. 그러나 이 발언에 대해 심각한 토론은 일어나지 않았다. 역사 자체에는 관심이 없다는 증거다.

역사논쟁이 난장판 수준에 이른 데는 정치인들의 책임이 크다. 그들은 갈등을 정리하고 해소하기 보다는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킴으로써 이익을 취해왔다. 정치적 이익을 고려하여 역사기술에 간여함으로써 갈등을 더 증폭시켰다. 심지어 현존하는 인물이나 사후 얼마 안되는 정치인까지 역사책에 올렸다는 것은 정치성과 상업성을 빼놓고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사람에 대한 평가는 객관성이 보장된 시점에 해야 하며 그러려면 그의 사후에, 그것도 세월이 많이 지나간 다음에 해야 할 것이다. 목소리 큰 사람이 유리한 환경에서 무슨 평가를 한다는 것은 넌센스다.

현재의 교과서 논쟁에는 관련자의 이해관계와 상업성이 개재되어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우선 출판사들은 지금의 검인정제도를 통해 많은 수익을 올렸다. 일선학교 교사나 역사학자 들에게도 민감한 이해관계가 걸려있다. 국정화하면 우선 교과서 선택권이 없어진다. 교사들이 좋아할 리 없다. 역사학자들도 국정화로 인한 여러 가지 제약을 거부하고 싶을 것이다. 국정화로 인해서 당장 구체적으로 손실과 불이익을 보는 사람은 많은 반면 국정화로 인해서 구체적으로 이득을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강의실에서는 대체로 비판적이고 자극적인 표현과 주장이 환영을 받는 경향이 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구조가 국정화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여기에 선거를 앞둔 정치권이 편승함으로써 분란이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매우 독특한 국가다. 오랫동안 중국에 예속되어 있었고 일제 식민지로 전락하기도했다. 전승국으로서 해방을 맞지 못했다. 국제냉전 속에서 국토는 분단되고 남북이 전쟁까지 치렀다. 영국 같은 나라가 치열한 투쟁과 논쟁의 과정을 거쳐 96년이나 걸려서 겨우 만들어낸 보통선거 제도를 어느 날 갑자기 도입하여 시행해본 결과 많은 시행착오가 일어났다. 이것이 때로는 부정선거로, 독재로, 탄압으로 나타났고 이에 따른 피해와 부작용도 많았다. 우리 역사를 보는 데 있어서 관용이 필요한 이유다.

순천향대 대우교수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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