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드의 외설 시비는 늘 있어 왔다. 알몸 노출이 다반사인 일반화된 요즘에야 문제될 게 없지만 50년 전만해도 엄격했다. 여북했으면 조선미술전람회나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큰 상을 타고도 풍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아예 전시를 않거나 철거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누드를 자유롭게 감상하는 요즘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서양화가 김인승(1910-2001)의 나부(裸婦·1936)도 누드라는 이유로 곡절을 간직하고 있는 작품이다. 유교적 관습이 지배한 엄격한 시대였으니 더욱 그랬을 것이다. 보통 담력과 용기 없이는 사실적으로 그려진 벌거벗은 여인 앞에 서는 것조차 감히 엄두도 못 낼 일이다.

여성의 관능미가 돋보이는 `나부`는 김인승의 동경미술학교 졸업 작품으로 조선미술전람회(선전) 최고상인 창덕궁상을 받았다. 그림 속 여성이 서양인인 점도 궁금하다. 이유는 당시 동경미술학교 전속 모델이 서양여성이기 때문이다. 당시 조선에는 누드화 전시도 불가능한데 언감생심 누드모델이 있을 리 만무다.

얼굴 윤곽과 풍만한 몸매, 왼쪽 무릎을 세우고 의자에 옆으로 앉은 동적인 자세에, 등 쪽으로 빛이 비춰져 반사되면서 윤기가 흐른다. 배와 가슴, 그리고 등의 곡선이 어우러지면서 여성 특유의 관능미가 돋보인다. 무심한 눈으로 무언가를 바라보는 얼굴 표정에서 고혹적인 매력이 전해진다. 누드화가 뭇 남성의 관음증을 유발시키는 이유가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나부는 선전에서 최고상을 받았지만 전시는 고사하고 도록에도 실리지 못했다. 풍속을 해친다는 이유 때문이다. `나부, 특선(창덕궁상) 개성 김인승`이라고 표기를 한 후 그림이 인쇄돼야 할 부분은 공란으로 처리했다. 서양식 의자와 여인이 깔고 앉은 대형 타월 등은 당시 시대성을 나타내는 아이콘이다. 누드의 예술과 외설 논란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여전히 진행형이다. 누드와 나체라는 용어선택에 따라 구분한다든지, 예술성이 있으면 누드고 없으면 나체라는 식의 말장난 같은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런 연유다.

김인승은 개성에서 태어나 일본 유학 후 선전 4연속 특선을 통해 화려하게 데뷔했다. 하지만 친일미술활동을 주도해 대표적인 친일 미술인으로 낙인찍힌 인물이다. `나부`의 사인이 `Jinsho, Kin`인 것은 김인승의 일본어 발음을 영문으로 표기했기 때문이다.

충남문화재단 문화사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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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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