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 가정관 붕괴에 ‘삶의 질’ 우선 인식

은퇴한 지 오래돼 특별한 소일거리가 없는 A씨(73)는 최근 아내와의 이혼을 결심했다. 20여 년 전, A씨는 사업을 하던 친동생이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자 흔쾌히 빚 보증을 섰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그는 결국 큰 돈을 날리고야 말았다. A씨를 탓하던 아내는 그나마 남아있던 모든 재산을 자신의 명의로 돌려놓고 점차 그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은퇴를 한 이후의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아내와의 대화는 완전히 단절됐다. 아내는 경제적 능력이 없는 A씨에게 돈을 한 푼도 주지 않을 뿐 아니라 사람 취급 조차 하지 않았다. 그에게 한 마디 말도 없이 몇 개월 간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가정을 지키고 싶었던 A씨는 이혼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지만 생활고가 너무 심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A씨는 "꼭 이혼을 바랐던 것은 아니지만 지금 상태로는 생활해 나갈 방법이 없다"며 "아내와 이혼하고 다만 얼마라도 내 몫의 재산을 받고싶다"고 토로했다.

이혼을 고려하는 노인 남성들의 이혼 상담 건수가 해마다 가파르게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7일 가정법률상담소에 따르면 지난해 60세 이상 남성의 이혼상담 건수는 373건으로, 2013년의 272건에 비해 37%나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여성의 이혼상담 건수는 남성 상담 건수의 2배에 가까운 752건으로 집계돼 여전히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었지만, 2013년 689건에 비해 9% 증가한 것에 그쳐 남성 보다 증가 폭은 낮은 것으로 확인됐다.

연령별 이혼상담 건수는 10년 전인 2004년에 비해 최대 24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와 2004년 연령별 이혼 상담 건수를 비교한 결과 60대는 37건에서 205건으로 약 5.5배가 증가했으며, 70대는 6건에서 146건으로 무려 24.3배가 늘어났다. 80대는 2004년 2건이었으나 지난해에는 22건으로 11배가 늘어나는 등 이혼을 고려하는 남성들이 전보다 크게 많아진 것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고령의 남성들이 이혼에 보다 적극적으로 변하게 된 이유는 전통적인 가정관이 붕괴되며 `삶의 질`이 `가정의 유지`라는 가치보다 더욱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평균 수명의 증가로 `가족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것 없이 남은 인생이라도 행복하게 살자`라는 인식이 자리잡게 됐다는 것이다. 원효종 둔산가족상담센터 소장은 "현재 황혼이혼을 하는 세대는 초창기 황혼이혼을 하던 세대보다 조금 뒷 세대다. 한 번 결혼하면 평생을 가야 한다는 전통적인 가정관에서 벗어난 세대"라며 "여성에게 의존적이었던 과거에 비해 남성들이 이혼 이후의 삶을 감당할 수 있다는 인식이 생겼다고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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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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